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정부가 자녀 1인당 출산 양육비 1억 원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685

의자와 나


BY 하나 2004-09-05

얼마전 인터넷 서비스 업체를 바꿨다.

컴퓨터를 새로사면서도 D인터넷 서비스는 바꾸지 않았었다.

요즘은 컴퓨터가 없으면 못하는 일들이 생겨버렸다.

올해 초등학교 입학한 녀석의 숙제를 할 때조차도 컴퓨터는 필요하게 되었다.

알림장...오늘의 숙제와 내일의 준비물을 알림장 노트에 녀석은 서툰 글씨로 적어온다.

가끔은 받침이 모두 틀려서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문장도 더러는 있지만

그 알림장의 내용을 꼼꼼히 확인을 해야 기본적인 학교생활이 영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알림장은 녀석이 다니는 학교 홈페이지에 그대로 공지가 된다.

"가정에 컴퓨터가 있으신 경우에는 매일매일 홈페이지에 접속하시어 알림장 내용을 확인해주십시오"

녀석은 그렇게 적어왔다, 알림장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함자는 몰라도 아니, 당장 엄마 이름도 한자로 쓸 줄 모르는 녀석은 인터넷 게임 접속할 때의 자기 아이디는 척척 외워서 입력한다. 그것도 영어의 알파벳 철자로....

남편도 통신연수를 한다.

컴퓨터가 없으면 도저히 할 수가 없다, 사이버 연수라는 것은...

기존의 D업체는 너무나 속도가 느리다며 이번에 새로 바꾸었다.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가입만 하면 경품에 3개월 무료 서비스까지 해준단다.

인터넷 업체를 바꾸면서 컴퓨터 모니터로 TV도 볼 수 있게끔 연결을 했다.

이제 더이상 텔레비젼이란 기계는 필요없다.

당장 그날부터 텔레비젼은 오로지 취침의 용도로만 쓰이는 안방으로 들어가버리고, 주된 생활 공간인 거실에는 컴퓨터가 당당하게 자리를 잡았다.

리모콘만 작동하면 언제든지 텔레비젼을 볼 수가 있었고, 손가락 한번만 까딱하면 곧 컴퓨터 사용으로 전환도 되었다.

녀석은 이제 방에 들어가지 않는다. 녀석의 허리보다 조금 높은 컴퓨터 책상위에 컴퓨터가 놓이고...가뜩이나 초고속 성장으로 시력이 급속하게 떨어지고 있는 녀석은

틈만 나면 게임을 하려고 하고 만화도 보려고 한다. 나한테 걸리면 나는 여지없이 소리를 질러버린다.

녀석은 TV볼때도 꼭 의자에 앉아서 모니터에 빠져들 듯이 쳐다본다.

 

"너!! 바닥에 앉아서 보라고했지? 왜 자꾸 의자에 앉아서 가까이 보는거야?"

 

소리 지르면 녀석은 마지못해 거실 바닥에 앉는다.

모니터 쳐다보느라고 고개를 뒤로 젖힌채...

그래도 나는 그게 더 좋은 자세라고 생각했다.

너무 가까이에서 모니터를 보면 눈이 더 나빠질 게 뻔하므로...

하지만, 녀석은 내가 잠시 등을 돌려 다른 일을 하는 틈에 재빠르게 다시 의자에 앉아버리고

우리 두 모자의 전쟁은 계속 된다.

 

모든 전자제품은 먼지를 빨아들이는 빨판이 보이지 않게 표면에 붙어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순식간에 먼지가 쌓일 리가 없다.

걸레를 집어 들었다.

물기를 바짝 짜 낸 걸레로 책상과 컴퓨터를 닦는다.

내가 좋아하는 퀴즈쇼가 모니터에 가득 펼쳐진다.

잠깐 나도 모르게 의자에 앉았다.

 

바닥에서보다 훨씬 보기 편하다, 목도 안 아프고...

아!!

이래서 녀석이 한사코 의자에 앉으려고 했구나.

왜 몰랐지?

한번만 내가 먼저 앉아봤더라면 되었을것을...

말할 수 없다, 내가 겪어보지 않고는 그 무엇에 대해서도...

작은 일상에서조차 경험은 감히 생각을 따라가지 못함을 깨닫게 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