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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밖 나비되어


BY 蓮堂 2007-05-27

 



어머님께서 임종의 조짐을 보이던 날 잠깐 붙인 눈 속에서 누군가가 그랬다. 이틀 밖에 못 사신다고. 그리고 거짓말 같이 어머님은 그 누군가가 일러준 대로 이틀 후 아버님을 따라 가셨다. 그 누군가가 아마 아버님이었던 것 같다는 짐작을 미루어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님의 1주기를 치룬지 나흘 만에 운명 하셨기 때문이다.

밤새 내린 이슬이 마르기도 전에 아버님은 서둘러 어머님을 모시러 오셨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 놓인 다리 위를 성큼성큼 걸어오시는 아버님의 발자국 소리가 새벽을 가르고 대문 앞에 이르실 때까지도 난 잠에서 깨어나지도 못하다가 꿈결인 듯 울리는 전화 벨 소리에 울음부터 터뜨려야 했다.

할머님이 돌아가시던 날은 꿈에서 본 하얀 고무신이 할머님의 유고를 일러 주었는데 정작 부모님이 세상 버리시는 날엔 아무런 언질도 없었다. 편한 잠이라도 미리 자 두라는 아끼는 마음이셨겠지만 자식 사랑 유별하셨던 부모님인데 떼어놓고 가는 자식들 아까워서 어떻게 눈을 감으셨는지 원망스럽고 야속하기만 했다.

생전에 유난스럽게도 금슬이 좋았던 분으로서는 일년 버티신 것이 그저 대단할 뿐이다. 지병이 있어서 시난고난 심신은 닳았지만 위험 수위를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가끔 바깥나들이도 하시고 내 집에 오셔서 잠시 머물기도 하셔서 마음을 놓고 있었기에 졸지에 마주한 어머님의 유고는 쉽게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지금도 꿈인 듯해서 살을 꼬집어보며 생시임을 확인해야 했다.

어머님은 아버님이 드리워 놓은 깊고 너른 그늘 아래서 60년 이상을 사셨다. 그늘 가장자리엔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는 듯 어머님은 늘 그늘 속에서만 곱게 살아 오셨고 그늘 밖은 어머님에게 있어서 두렵고 경계해야 할 양지였다. 모든 생물은 햇볕이 잘 드는 양지에서 살아야만 건강하게 오래살 수 있는데 반해 어머님은 햇볕을 만나면 허옇게 퇴색되거나 시들어 죽고 마는 음지식물을 닮아 있었다.

언젠가 방안에서만 키우던 줄기 식물을 베란다에 내 놓았더니 고개를 틀고 누렇게 늘어져 죽어 버렸던 기억은 자꾸만 어머님을 연상케 했다.  

아버님이 드리운 그늘은 걷혀졌지만 그 그늘은 어머님에게서 걷혀진 게 아니고 오히려 그늘이 드리웠던 자리는 이미 메울 수 없는 깊은 구덩이로 남아 있었다.

어쩌면 어머님 스스로 구덩이를 파고들어 가서 점점 더 몸을 숨기고 세상과의 단절을 고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화석처럼 굳어가는 무표정한 모습을 바라보는 자식들 가슴앓이는 당신의 몫이 아닌 듯 외면 해 버리시는 이기심에 때론 화가 나기도 했었지만 자식이라는 차양막은 어머님에게 아무런 힘이 되어 드리지 못하셨던 것 같아서 어머님을 보내드린 지금 하늘을 쳐다보기가 너무 죄스러워 자꾸만 목줄이 아파온다.

어머님 살아생전에 두런두런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속내에 감춘 섭섭함까지 헤아려 드리지 못했고 다음 세상에 태어나도 네 아버지와 살겠다고 하시던 어머님의 순애보를 갑갑하게만 여겼을 뿐 아름답고 지순한 사랑이라고는 생각 해 드리지 못한 불효도 가슴 한 복판을 연기가 나도록 지져대고 있었다.

어머님은 하얀 나비가 되어 아버님 곁으로 날라 가고 싶어 하셨다. 아무래도 나비가 되어야만 아버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 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비가 되어 날아 갈 궁리를 하시려고 겨우 내내 번데기처럼 웅크리고 계신 걸까.

봄빛이 이맛전을 누르기 시작할 무렵부터 어머님의 몸에서는 이미 날개가 돋아나고 있었고 그 날개 짓은 더 이상의 머무름을 허락하지 않았다.

한 쪽 날개가 꺾여진 채로 이승에서 버둥대던 비익조는 남아 있던 날개까지 모두 접어 버리고 그늘 밖을 벗어 난 나비가 되었지만 팔십년 동안 온몸을 두르고 있다가 벗어 놓고 간 허물(껍질)은 자식들 가슴 한 복판에 떨어지지 않은 딱지로 남아 있었다.

세월이 변해서 꽃상여는 타시지 못했지만 장례식장 주변엔 고인을 보내 드리려는 영산홍의 흐드러진 배웅이 숨을 멎게 했다. 장밋빛인들 저리도 고울까.

일년 전 아버님을 보내 드릴 땐 진달래 개나리가 눈시울을 붉히게 하더니 어머님 가시는 자리엔 핏빛보다도 더 진하고 고혹적인 영산홍이 다시금 목줄을 눌러댔다.

어머님의 유골은 일년 전에 먼저 자리 잡은 아버님 곁에 모셔졌다. 한 뼘 거리도 안 되는 곳으로 오시기 위해서 일년 동안 힘든 자작걸음 떼어 놓으시더니 한 줌 재가 되어 또다시 아버님 그늘 아래로 들어 가셨다.

그러나

그날 나는 보았다.

산소 위를 유유히 나는 한 마리 하얀 나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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