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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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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큰 여자


BY 蓮堂 2007-03-28

 


내 키는 160cm다. 부모님도 작은 분이 아니셨기에 내 형제들 모두 평균치보다 컸으니 유전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그런고로 내 아이들의 작지 않은 키가 내 키와 무관하진 않을 것 같다. 남편의 키도 그리 크진 않았지만 아마 내 키까지도 작았다면 모계를 들먹이며 그건 순전히 내 탓으로 덤터기를 써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양가 높은 먹을거리가 풍부한 요즘은 유전인자를 부정해도 될 만큼 이변이 생겨서 부계, 모계와는 상관없이 울퉁불퉁하다.

키가 큰 사람보다도 작은 사람이 더 많았던 주변의 또래에서 멀쑥한 내 키는 항상 비정상적으로 머리하나는 더 튀어 올라서 소(牛) 난 장(場)에 말(馬) 난 것 같이 괜히 어색하고 겉도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과민반응이었을까.

친한 친구들이 모두 내 키만큼만 컸더라도 큰 키에 대한 콤플렉스나 반감으로 학창시절 내내 머리를 앓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탓’을 해 보기도 했다. 키 작은 친구에게는 항상 아담하고 귀엽다는 소리가 수식어처럼 따라 다니는 반면에 비쩍 말라 비린내가 날 듯한 나에겐 늘 자존심 뭉개지는 말이 빠지지 않고 달라붙어 생채기를 내었다. 그 생채기가 아물어 딱지가 앉을 틈이 없이 소금이 뿌려지곤 했었는데 키가 크다보니 따르는 흉도 많았다.

‘멋대가리 없이 싱겁게 키만 커가지고’ 라는 말은 그래도 양반이다. ‘키 큰 여자치고 속 찬 여자 없더라.’고 쭉정이 취급을 했고 ‘시집가긴 글렀다.’ 라는 말로 사형선고를 내리기도 했다. 하긴 작은 사람치고 속 빈 사람 드물고 큰 사람치고 속 찬사람 없다는 옛말이 틀린 말은 아님은 나이가 들면서 경험 한 일이다. 당시 대통령도 작았고 내로라하는 위인들 중에도 작은 사람이 더 많았다는 사실은 믿거나 말거나지만 실제로 나폴레옹이나 아인슈타인 그리고 이 순신장군과 세종대왕까지도 작았다고 하는데 작은 고추가 더 맵다는 속담을 뒷받침하는 좋은 예다.

키 크다는 소리를 언제부터 들었는지 몰라도 철들고부터 ‘꺽다리’라는 별명이 귀에 익었는걸 보니 아마도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이미 내 키는 평균치를 웃돌았던 것 같다.

내 눈 높이에서 얼쩡거리던 담장이 차츰 내 눈 아래로 쳐져 내려갈 때 쯤 해서 사람들 입방아처럼 큰 키가 정말로 천정을 뚫을까봐 두려워서 이불 뒤집어쓰고 운적도 있었고 발이 크면 키도 큰 다는 소리에 억지로 작은 신발 신고 절뚝거리며 다닌 적도 있었다.

내 기억에도 앞자리에 앉아 본 적이 없다. 항상 뒷자릴 면하지 못했으니 키가 작아서 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공부 잘하는 친구보다도 더 부러웠고 키 크게 낳아준 부모님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균형이 잡혀 소위 말하는 에스(S)라인의 볼륨을 가진 것도 아니고 설익은 풋내만 풍기는 밋밋하고 볼품없는 꺽다리에 불과했기에 곱절로 커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새 학년이 되면 일렬로 죽 세워놓고 키 고르기를 해서 번호를 부여했는데 그 시간만큼은 결석을 하거나 도망을 해서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을 만큼 싫었다. 그냥 가나다순이나 무작위로 번호를 주고 줄을 설 때에도 자기가 서고 싶은 자리에 서도록 해 주었으면 큰 키에 대한 콤플렉스를 덜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맘이 들었다.

어느 해는 눈 딱 감고 중간에 서서 선생님의 시선을 피했지만 결국엔 덜미 잡혀서 뒤로 끌려 나와야 했는데 마치 도적질 하다가 들킨 꼴이 되고 말았다. 항상 뒷자리에 앉다보니 짝꿍 없이 혼자일 때도 있었고 간신히 짝을 만나도 나보다 작은 탓에 늘 장대 같은 키에 대한 고민이 깊다보니 잘라 낼 수만 있었다면 무릎 아래까지 잘라 내고 싶을 정도로 키에 대한 불만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콩나물 크듯이 가늘게 위로만 쑥쑥 자라던 키가 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 주춤거리더니 고등학교 가서는 성장이 거의 멈추었다. 그 덕분에 자리가 차츰 앞으로 당겨져서 3학년 때 드디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60명중 45번이라는 번호를 달기에 이르렀다. 물론 자리 배정 할 때 약간의 부정은 있었다. 목을 자라처럼 집어넣고 무릎을 약간 꺾은 덕분에 서너 자리는 앞 당겨 질수 있었는데 굳이 앞자리를 원했던 것은 시력이 좋지 않아서 칠판 글씨 보는데 많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몇 학년 때인지 생각이 나지 않지만 머리 좋고 자존심 센 키 작은 선생님이 계셨는데 나하고 마주서면 시선을 아래로 비스듬히 깔아야 대화가 될 정도였으니 상대적으로 내 키는 더 커 보이고 선생님 키는 더 작아 보였던 것 같다.

나른한 오후 수업시간에 내 옆에 앉아있던 친구가 갑자기 군대 다녀 오셨냐는 엉뚱한 질문을 했다. 그 질문의 속뜻은 설마 그 키로 군대를 갔겠느냐는, 다분히 무시가 실린 질문이었지만 선생님은 표정하나 안 바꾸고 다녀왔다고 했다.

그러자 그 친구의 ‘에이~~ 거짓말’이라는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순간 선생님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짐과 동시에 고함이 터져 나왔다.

“방금 웃은 놈들, 저어기 키 큰 놈들 모조리 앞으로 나와”

키 큰 놈들만 웃었던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웃은 죄로, 키 큰 죄로 도매금으로 묶여서 한바탕 소동을 겪었는데 그 때 벌을 세우면서 하신 말씀은 과히 압권이어서 훗날 두고두고 화제가 되었다.

“야 이놈들아, 암만 키 작아도 엉덩이만 땅에 안 끌리면 되는 거지..........”

내 키가 큰 키가 아니고 보통 키로 전락해 버린 된 요즘 서구화 된 큰 키들을 보니 기형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무조건 커야 영순위가 되고 플러스 점수를 받지만 작은 사람은 속이 찼던 말든 한 점 깎인 점수를 받아야 하는 일그러진 사회 풍조가 심히 염려스럽다.

매스컴에서 거품 물고 기사화 시킨 큰 키에 대한 우려가 눈길을 끌었다. 예전보다 체격은 커지는데 반해서 체력은 떨어지는 원인규명을 했는데 한마디로 잘 먹는데 비해서 운동량이 떨어진다고 했다.

비만이라든지 다이어트라는 단어조차도 모르고 살았던 시대를 지나오면서 세월 참 무섭게 변했다는 격세지감에 큰 키를 부정하고 거부했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우울하게 다가왔다.

이제는 크다는 소리보다 ‘보기 좋다. 알맞다.’라는 말로 승격된 내 키가 지금보다 작았더라면 어쩔 뻔 했을까 하는 가슴 훑어 내리는 간사함을 시대 탓으로 돌리고 싶다.

결핍된 조건 속에서도 위로만 키워야 했던 키를 한사코 밀어내고자 했던 철부지는 대나무같이 속을 비운 채 무조건 위로만 키우려고 안간힘을 쓰는 요즘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얘기가 참 많다.

의학이 고도로 발달한 요즘은 키를 키워주는 약재나 기계 그리고 인위적으로도 키를 키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가하면 미심쩍고 눈에 거슬리는 신체 부위를 깎아 내거나 보태서 자연적인 내 것은 아예 잃어버린 채 살아도 하등 관계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심지어는 부모가 점지해 준 성(性)을 바꾼 연예인이 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현실에 대한 답을 내리기가 어렵다. 그러나 너무 외형에만 치우친 나머지 정작 중요한 것은 잊고 사는 게 아닐까 자꾸만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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