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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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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큰 남자


BY 蓮堂 2006-01-07

 

어느 한가한 주말,
지인들과 모처럼 만난 자리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퇴근 하는 길인데 점심을 차려 달라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주말이건 평일이건 점심은 집에서 먹은 적이 별로 없어서 맘 놓고 밖에서 외식을 하고 있는 중인데 밥을 차려 달라는 것이다.
동석했던 연세 드신 남자 분이 내 전화기 밖으로 새어 나온 남편의 말을 은연중에 듣고 있었는지 통화가 끝난 뒤에 나를 보고 고개를 모로 비틀면서 의미 있는 웃음 보냈다.
"그 나이에 아직도 밥 차려 달라는 ‘간 큰 남자’가 내 주변에 있다는 게 신기하네요."
그리고 더 신기한 건 ‘간 큰 남자’에게 한마디 거부감 없이 꼬박 꼬박 '예, 예'로 일관하고 있는 나를 보고 천연 기념물이라는 농까지 곁들였다.
말로만, 입으로만  떠도는 '간 큰 남자'가 내 남편이라는 걸 조금도 염두에 두고 살지 않았던 무신경이 놀랍기도 했지만 씁쓸한 기분이 떨쳐지지 않았다.

 

다소 억지스럽고 과장된 부분이 있긴 하지만 간이 큰 남자란,


대화할 때 아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남자
아내가 드라마 볼 때 스포츠 보겠다고 체널 바꾸는 남자
아내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두 번 말하게 하는 남자
아내와 통화 후 먼저 수화기를 내려놓는 남자
돈을  달라는 아내에게 어디 쓸 거냐고 물어보는 남자
아내가 외출할 때 어디 가느냐고 물어 보는 남자
외부에서 전화 왔을 때 누구냐고 물어 보는 남자
아침에 밥 달라고 하는 남자
아내 앞에서 '피곤하다'는 말 함부로 내 뱉는 남자..................................등등

이 밖에도 수없이 많은 말들이 돌아 다니지만 하나 같이 남편들의 간덩이에 메스를  들이대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웃을수 밖에 없는 것들이었지만 그게 우스개로 보아 넘길수 없는 가시 같은게 목에 걸려 있다.

 

출처가 미로인 주인 없는 말이 허공에 떠 돌면서 뭇 남자들의 사기를 꺾어놓음과 동시에 여자들의 기를 살려 주는데 앞장섰던 이 '간 큰 남자' 씨리즈는 남자들이 확대해석하고 부풀려서 우회적으로 지어 냈다는 설(說)도 있지만 심증은 가나 물증은 없다.
 이 ‘간 큰 남자’ 씨리즈는 이른바 마쵸이즘(Machoism : 남성 우월주의)의 위축을 두려워   한 나머지 경계심을 은근슬쩍 표출시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에 여성들에게는 한국사회에서 남녀평등이 이미 이루어진 양 착각하게 만든 도구로 역이용되는 건 아닌지 한번쯤 되짚어 볼 필요가 있는 듯 하다.
여성들의 높은 학력으로 사회진출이 늘어나고 능력이 배가되는 싯점에서 불거져 나온 말이기에 시사하는 바가 평범하지만은 않다.
물론 지금까지 부권위주의 가정생활에서 숨통조이며 살아온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쌍수 들어 환영할 ‘옳은 소리’가 될지언정 자칫 가정의 틀이 어긋 날수 있다는 우려는 뒷전인 것 같다.
역사적으로도 공처가는 많았는데 희한한 건 그 가정건사를 옳게 하지 못한 죄목으로 벌이 가해졌던 때도 있었고, 관직에서 쫓겨나는가 하면  무능으로 지탄 받고 가문에서 매장 당하는 수모를 겪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유교문화가 꼿꼿하게 살아 있었던 가부장 시대에 가장의 권위를 실추시킨 죄를 범할 수밖에 없었던 그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마디로 '더 센 여자'를 아내를 두었거나 아니면 기우는 혼사를 했을 경우 또는 윤리적이나 도덕적으로 궤도를 벗어난 행위를 저질렀을 때는 꼼짝없이 덜미 잡힌 채로 고스란히 무릎 꿇어야 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거기다가 무능력을 보태면 남자의 간이 줄어듦과 동시에 여자의 간은 두 배 세 배로 늘어나게 되어 있다.
모든 남자 여자가 다 여기에 해당되는 건 아니다.
쉽게 말해서 '質'적으로 우수한 사람은 어떠한 불상사가 생기더라도 간의 크기가 좌우되지 않음은 물론이거니와 설사 한 쪽 편 간이 작아지더라도 자기 간 떼어서 보태주는 아량을 베푸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술을 과하게 먹어서 간 비대증 환자가 늘어난다는 소리는 들어 보았지만 자잘한 일상으로 인해서 간이 커진다는 얘기는 의학적으로 봐도 턱도 없는 얘기다.
간이 콩알 만 해 졌다느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느니 하는 속담을 보더라도 간이라는 장기가 때에 따라서 늘어나고 줄어드는 희한한 재주를 가졌다면 간으로 인한 불치병으로 죽는 일도 없어야 형평성에 맞는 것 같다.
예전에는 부부사이에 생길 수 있는 당연한 일도 이 ‘간 큰 남자’씨리즈가 나온 이후에 이상하게 변질되었다.
한 예를 들어보면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오면 오면 당연히 누구냐고 물어보게 되는데 이것이 왜 ‘간 큰 남자’로 호도 되는지 모르겠다.
아내가 아침밥상 차리는 게 하등 이상할 것도 넘치는 것도 아닌데 간이 큰 남자라고 구석으로 몰아 부친다.
남편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족쇄를 채우려 드는 아내들 역시 ‘간 큰 여자’라는 걸 인식하고는 있는지 몰라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면 숨을 쉬는 것 조차도 간이 큰 남자에 속해야 된다.
남자가 약해서 아내에게 밀리는 게 아니고 ‘가화만사성(家和万事成)’을 위해서 이 한 몸 희생하고 있다고들 한다.
맨 정신이 아닌 술잔 기울이면서..................
물론 웃자고들 하는 얘기지만 말속에 뼈가 빼곡히 박혀 있는 웃지 못 할 유머를 단순히 유머로 보는 게 아니고 당연하게 기정사실화 시키는데 문제가 있다고 하면 고루한 생각일지는 몰라도 커가는 자식을 둔 부모로서 반기를 들고 싶다.
내 아들이 쥐어 살면 반편이고 내 딸이 쥐고 살면 똑똑한 줄 아는 기형시대 한 가운데 내가 서 있는 건 아닌지 두려운 생각마저 든다.
남녀가 평등한 건 반길 일이지만 아내나 남편의 몫이 따로 있게 마련인데 평등을 핑계 삼고 앞세워 아내로서 여자로서 책임회피 내지는 월권하는 모양새만은 보여 주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부부사이에 신뢰가 있고 사랑이 있으면 이런 우스개 소리는 한때의 유행어로 치부하고 웃어 넘길 수는 있어도  감히 신성한 가정을 침범하지는 못한다.
남편의 몰락은 가정의 몰락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등식이 이루어진다는 지극히 기초적인 공식을 잊고 있지 않다면 남편의 기를 살려 주는 것은 아내들의 몫이다.
어쩌다 삐걱거리는 소수에게 다수의 지극히 정상적이고도 평온한 가정과 가장이 잠식 당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나 자신이 구닥다리 사고를 가지고 있는지는 몰라도 ‘온고지신(溫故知新)’의 틀은 분명히 지키고 산다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