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고 했는데 난 털끝보다도 더 중하고 귀한 신체 일부를 잃어 버렸다.
내 이...웃으면 하얗게 드러나는 앞니 하나가 박살이 났다.
지난 금요일.
여고동창 모임을 대구에서 가졌다.
30여년 만에 만난 대구 동창들과 합류를 해서 팔공산 동봉까지 올라갔다.
열다섯 명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다보니 머리끝까지 달라붙은 안개 속을 헤집고 아무것도 잡혀오는 것 없는 꼭대기에서 서로 몸을 밀착시키며 모처럼의 해후를 즐겼다.
언제 만나도 좋은 친구들과의 만남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부모님도 팽게 치고 하루 종일 바깥으로 싸돌아다니는 마누라가 못마땅했지만 같이 늙어가는 마당에 드러내 놓고 불평을 못하는 남편에게 미안해서 평소 안 하던 짓거리를 제안했다.
버스 터미널에서 만나 집까지 같이 걸어서 데이트 하자고.........
시큰둥하던 남편도 셀셀 거리는 내 아양에 할 수없이 허락을 하는것 같았다.
미리 나와서 두 팔 벌려 반길 줄 알았던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하니 인근 둔치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길래 내가 가마고 했던 게 화근이었다.
다리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그대로 고꾸라졌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리 보다는 머리가 앞섰던 게 고꾸라진 원인이었다.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양 날개 (팔)가 주머니에 갇혀 있다보니 중심을 잃고 그대로 계단에 얼굴을 쳐 박았던 거였다.
넘어지는 순간에 정신이 아득했고 입안에 자갈이 한가득 물려 있는 걸 느꼈는데 이 머저리 같은 머리는 그게 정말 자갈인줄 알고 뱉아 내려고 혀를 내미는 순간 입안이 허전해 옴을 알았다.
앞니 자리에 혀가 그대로 막힘없이 통과 하는 것 같아서 손가락을 넣어보니...........
없다...
내 앞니 하나가 달아나고 입안이 그득했다.
앞이 아득하면서 꿈인가 싶었다.
징징 울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더니 놀란 남편은 과장된 내 울음소리에 얼굴이 박살난 줄 알고 허연 얼굴로 쫓아왔다.
거울보기가 무서워서 내 꼴이 어떻게 되었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지만 입안이 엉망이 된 건 확실했다.
남아있는 이는 죄다 흔들리고 욱신욱신 쑤시는 것 같고 입안에는 피하고 부서진 이빨 조각들이 혀끝에 달려 나왔다.
내 얼굴을 들여다보던 남편은 놀라기는 커녕 '짤짤' 거리고 돌아다니다 보면 흉한 일 겪게 되어 있다고 혀를 차는걸 보니 그리 대단치는 않은 것 같아서 다소 맘이 놓였지만 '당신 만나려고 하다가 사고 쳤으니 난 죄 없다'로 비겁하게 미리 선수를 치며 배를 내 밀었다.
그래야만 약간은 정상 참작이 되어서 면목이 설 것 같았다.
입을 움켜쥐고 집에 와서 거울을 보니 내 얼굴이 아닌 완전히 '영구'였다.
그러지 않아도 견적 많이 나오는 얼굴인데 완전히 플러스 알파가 되었다.
입 언저리가 아파서 밤새 끙끙 거렸다.
깨져버린 이도 아까웠고, 견적이 얼마나 나올지도 걱정스러워서 편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올 한해는 일진이 그리 좋진 않다고 생각하다가 생각을 바꿔 먹은 건 내가 넘어진 장소 바로 그 위 횡단보도에서 올해 초 남편 직원 부인이 교통사고를 만나 즉사했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한순간에 목숨을 잃은 사람이 있는데 그까짓 앞니 하나 잃은 건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일을 가지고 심란하게 속 앓이 한다는 게 너무 엄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 얼굴에 약간의 찰과상을 입었을 뿐 다른 데는 멀쩡했다.
"에......이빨을 떼우기는 힘들고 새로 덮어 씌워야 하는 수밖엔 없습니다....돈이...."
굵은 안경테 너머로 의사의 눈빛은 비싼 걸 해야 좋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잠깐 새에 수 십 만원 치과 의사 가슴팍에 안겨주고 나와야 했다.
그래도 假齒 씌우고 잔칫집에 가서 시치미 떼고 주는 음식 태연하게 받아먹었다.
송곳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