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신 시계를 들여다보는 마음은 달리고 있는 시내버스보다도 더 앞서서 달음박질 치고 있었다.
서예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둘렀지만 시간은 이미 정오를 지나고 있었기 때문에 혼자서 현관문만 뚫어지라 쳐다보며 두 시간 이상 나만 기다리고 있을 친정 엄마 생각에 가슴은 바작바작 타 들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스무 해를 훨씬 넘긴 뒤에야 비로소 딸네 집에 발을 들여 놓으셨지만, 친정 엄마는 아직도 아들 집 만큼 만만하고 편치를 않으신지 하루 종일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
시야에 잡혀올 티끌 한 올이라도 건지려는지 멍하니 한곳만 뚫어져라 쳐다 보신다거나 머리끝까지 뒤집어 쓴 이불 사이로 간간이 한숨만 쏟아 내실뿐이다.
오라버니 집에 남겨놓고 오신 아버님 생각에 엄마의 머릿속은 복잡하고 어지러우셨으리라
부모님 병 수발에 지친 오라버니 내외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 보려고 온갖 머리를 다 짜 내었지만, 딸네 집을 사돈 집 만큼이나 불편하게 생각하신 아버님을 모셔 오는 건 실패했다.
그러나 아버지 그늘 벗어나면 하늘이 두 쪽 날것 같이 불안 해 하시던 엄마가 무슨 맘으로 순순히 아들을 따라 나섰는지 그저 신기하고도 놀라운 일이었다.
돌아가시려고 맘이 변하셨을까…….
아니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딸네 집에서 며칠 기거 하려고 맘을 돌려 잡수셨을까…….
남다르게 금슬이 두터운 두 분을 생이별 시킬 수밖에 없었던 그 밑바닥에 깔린 진짜 이유는 엄마를 위한, 정신이 맑지 못하신 아버지로부터의 일종의 임시피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엄마는 자식들에게 서운한 맘 접지를 못하시는 것 같았다.
앞날이 길지 않은 늙은이들을 갈라놓았다고…….
엄마의 잔기침 소리에 눈이 떠졌다.
천식기가 있는 엄마는 늘 기침을 하셨고 그로 인해서 가르릉 거리는 가래소리를 목에 달고 계셔서 들을 때마다 오금이 저려 올 정도로 안쓰럽고 가슴이 아팠다.
비어있는 딸 아이 방에 짐을 푸신 엄마는 혹시라도 딸아이의 물건 다칠새라 최대한으로 몸을 말아서 당신이 차지하는 면적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애쓰는 게 역력해서 보고 있는 맘이 편치를 않았다.
별로 크지 않은 방이 답답하게 느껴 지실까봐 주무실 때는 항상 문을 반쯤 열어 놓아두었는데 엄마는 당신의 잦은 기침소리 때문에 사위의 단잠을 빼앗을까봐 문을 꼬옥 닫고 주무시는 거였다.
그런데도 기침소리에 귀가 열리는걸 보니 꽤 오랜 시간 기침을 밭으신게 틀림없었다.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엄마는 잠이 드셨는지 기척이 없으시다.
깔고 계신 요는 반으로 접어서 가로로 깔아 드렸지만 그래도 자리가 남아 돌 정도로 엄마의 몸은 반 토막 밖에 되지 않았다.
작은 키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반으로 꺾인 듯한 허리는 펴지질 않고 그대로 굳어진 상태로 키를 낮추고 있었다.
마치 뱃속의 태아가 웅크리고 있는 자세로 주무시는 앙상한 엄마의 다리를 펴 드렸지만 어느 샌가 얇은 종이 말려들듯이 동그랗게 오그라들었다.
가느다란 숨소리가 새어나올 때마다 엄마의 작은 가슴은 미미하게 떨렸고, 열 달 동안 나를 품고 계셨던 아랫배는 꺼진 듯이 함몰되어 있었다.
비스듬히 열어놓은 문 사이로 흘러들어온 빛에 드러난 엄마의 검버섯 핀 얼굴은 회색빛을 띤 영락없는 미이라였다.
깊이 패 인 주름위로 일흔 여덟 해의 고담함이 소롯이 배어 있었고, 끊어질듯 아슬아슬하게 새어 나오는 숨소리는 가늘기만 했다.
움푹 꺼진 두 눈자위는 어둡게 그늘이 깔려 있어서 두 번 다시 열릴 것 같지 않았다.
반쯤 열린 입술사이로 드러난 치아는 성하게 남아 있는 게 몇 개 안될 정도로 듬성듬성 박혀 있었다.
이 모습이……이 가여운 노인이 내 어머니라니….
비질거리며 배어나온 눈물 때문에 희미하게 윤곽만 집힌 엄마가 낯설기만 했다.
쥐면 한 움큼도 채 되지 않을 것 같은 왜소한 몸속에 엄마는 우리 여섯 남매를 담고 계셨다.
피 서 말과 땀 닷 말을 쏟아내며 하늘이 노랗도록 가물거리는 의식의 끝자락 놓지 아니하시고 이 세상 안으로 나를 끌어 들인 엄마다.
얼굴 위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가만히 이마 위로 쓸어 올리고 있는 손이 가늘게 떨렸다.
얼마 만에 엄마의 살과 맞닿았는지 기억조차 없을 정도로 난 무심하고 무정한 딸이었다.
서운하고 답답한 넋두리를 딸에게 털어놓고 싶어 하신 엄마에게 난 매정하게 잘랐다.
혹시라도 아들 며느리에게 조금이라도 흉이 되고 흠이 되는 얘기라면 아예 하시지 말라고….
단 한번이라도 엄마편이 되어서 든든한 딸의 힘을 과시하시도록 허락치 않은 내 못된 소갈머리지만 내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엄마는 이미 꿰뚫고 계셨기에 ' 넌 너무 점잖아서 내 자식 같질 않다'라는 말로 서운한 맘 접으셨었다.
엄마하고 나눌 수 있는 오곤조곤 한 대화도 한계가 있다보니 집 안에는 그저 묵직하게 가라앉은 공기만 이따금씩 흔들리는 시늉을 했다.
입 다물고 내 할 일만 하고 있는 나도 어지간히 재밋살 적은 딸이지만 그렇다고 엄마가 먼저 말 걸고 나를 충동질 하는 일은 없었다.
엄마한테 미안한 맘 은근슬쩍 뭉갤 요량으로 나름대로는 오버액션에 가까운 재롱 각본을 짰지만 내 재롱 받아서 입 자위 한번 움직이는 걸로 끝을 맺을 만큼 재밋살 적은 건 모녀가 한 치도 기울지 않았다.
어딜 가나 외로운 노인네의 입지는 넓지 않았기에 먹고 자고 잠시 넋 놓고 앉아 있는 게 고작이었다.
내 나이 적에 엄마는 나를 시집 보내놓고 아깝고 아까운 생각에 홧병까지 앓으셨다는 들리는 소리에 가슴을 움켜쥐고 몇날 며칠을 무릎 속에 얼굴 쳐 박고 어깨울음 쏟아 냈었다.
지금 그 엄마 앞에 내가 엄마의 모습으로 앉아 있다.
그 옛날 나를 위해서 흘리셨던 눈물만큼이나 진한 서러움을 소리 없이 삼키고 있다.
서러움이 삼켜진 가슴은 토막토막 끊어질 듯이 아파왔다.
살아 온 세월만큼이나 진저리 쳐 지는 삶의 파편들을 가슴에 묻고, 삭이고, 털어 버리며 가벼운 마음으로 엄마는 이 세상을 훌훌 떠나고 싶어 하셨다.
비교적 덤덤하고 말수가 적은 엄마는 웬만해서는 희로애락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 무서운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엄마의 마음속에 담겨있는 애환을 알뜰히 궁금해 하는 자식이 없다.
다만 ‘그럴 것이다’ 라는 엉성한 추측만 할 뿐 깊은 속내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나와 형제들이다.
이제 나도 내 뒤를 서서히 돌아 볼 나이가 되었음인지 엄마에 대한 안타깝고 저린 마음이 엄마를 가까이에 두고 모셔 보니까 저절로 깨우쳐짐을 느꼈다.
앞으로 엄마를 위해서 흘릴 수 있는 눈물과 가슴앓이는 얼마만큼 될까.
엄마가 나를 위해서 노심초사 하신 그 깊디깊은 속울음이 튕겨낸 눈물 한 방울에도 미치지 못하는 알량한 가슴속 슬픔조차 부끄럽고 죄스러워 자꾸만 온몸이 떨려오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