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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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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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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르고 싶은 순간들.


BY 蓮堂 2005-07-30

 

두 아이를 앞세운 젊은 부부가 트레이닝 차림으로 가볍게 뛰어오고 있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매였는데 큰 아이가 딸아이였다.
부모들이 앞을 세운 아이들도 같이 뛰다가 작은 아이가 넘어지는 게 보였는데 발딱 일어나던 아이가 뒤에 따라오던 누나한테 돌연 소리를 지르며 가슴팍을 밀었다.
"너 때문에 넘어 졌잖아!.........."
바닥에 뒹군 게 누나 탓이라고 징징 울면서 원망을 했으나 누나도 지지 않고 대들었다
"빙신아 네가 못 뛰니까 엎어졌지.......용용..."
"니 발에 걸렸잖아"
동생을 놀려먹는 딸과 누나에게 대드는 아들을 보고 젊은 엄마도 덩달아 소리를 지른다.
"니들 밖에 나와서 까지 싸우냐".....제발 좀 좀............내가 못산다.."
아이들 싸움에 넌더리를 내는 엄마의 꾸지람도 아랑곳없이 아이들은 서로 니탓으로 돌리느라고 가던 걸음 멈추고 노려보고 서 있었다.
멀찍이서 쳐다보고 있던 아이의 아빠가 혀를 차면서 세 식구 등을 밀며 내 앞을 지나쳤다.
남편하고 나선 저녁 산책길에서 생긴 일이었다.
참으로 정겹고 부러운 모습이 예전의 나를 보여주는 듯 했다.

난 예전부터도 아이들을 참 좋아한다
옆을 스쳐 가는 아이가 있으면 머리를 한번 만져 본다든지 볼을 살짝 쥐어 봐야 직성이 풀렸다.
아주 어린 갓난애는 번쩍 들어서 몇 번 흔들다 내려놓아야 손끝이 근질거리지 않을 정도로 아이들만 보면 반사적으로 나도 모르게 손이 가곤 한다.
이럴 때 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엄마라는 자부심으로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 놓는다.
"다들 이쁘다고 그래요......영리하게 생겼다고......."
팔불출이면 어떻고 모자라면 어떠랴.
내 아이 귀여워 해주고 이쁘다고 하는데 마다 할 엄마는 없는 거다
내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귀엽고 이쁘다는 생각보다는 티격태격 다투는 게 보기 싫어서 빨리 크기만 기다렸는데 남의 아이가 더 귀여워 보이는 건 무슨 조화 속인지 모르겠다.


20여 년 전, 그러니까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인 것 같다.
아이 둘을 데리고 시댁을 가는 길이었는데 지금은 사라진 완행기차를 탔다.
그때 기차 안엔 지금의 전철처럼 의자가 길게 벽 쪽으로 붙어서 앉아있는 사람이 반대편에 앉은 사람을 마주보고 앉아야 했다.
아이 둘을 양옆에 앉혀놓고 가는데 개구쟁이 기질이 다분한 아들 녀석이 두 살 위의 지 누나에게 자꾸만 시비를 걸면서 차안이 조금씩 시끄러워졌다.
그때에는 승객들이 꽤 많아서 보는 눈도 많았다.
마주앉아 있는 사람들이 정면으로 보고 있어서 미안하고 창피해서 아무리 만류를 하고 나무라도 아이들의 다툼이 멈추지를 않자 드디어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 내가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누나와 약간의 가벼운 주먹다짐을 하던 아들녀석이 먼저 울음을 터뜨렸고 딸아이는 우는 지 동생을 끌어안고 같이 통곡을 하며 나를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
동생을 나무란 내가 못 마땅했는지 딸애는 어느 듯 아들녀석 편이 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계모가 되어 있었다.
그때 맞은편에 앉아서 우리의 일거일동을 웃으며 지켜보던 할머니 한 분이 조용히 나를 나무랐다.
"새댁......,아이들 너무 나무라지 말아요. 그래도 아이들이 서로 싸우고 울고불고 할 때가 좋아요. 아이들 다 커 봐요..싸우라고 해도 안 싸우고 울라고 해도 안 울어요."
아이들 앞으로 건너오시더니 아이들 등을 토닥거리면서 연신 이쁘다는 소리를 하셨다.
" 아이들 크는 건 잠깐 이라우..내가 보기엔 참 이쁘고 보기 좋구만요."
그 당시엔 그분의 속 깊은 말뜻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콩나물 크듯 쑥쑥 커서 내가 할 일 좀 줄여주고 내 그늘에서 빨리 벗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난데없이 나무라지 말라니.........
목젖이 보이도록 억지울음 쏟는 녀석들이 이쁘다고 하셨다.


이해할 수 없는 할머니의 그 말뜻을 이해하는데 20여 년이 걸린 것 같다.
지금 내 앞에서 벌어졌던 그 아이들의 티격태격이 왜 그렇게 이쁘고 보기 좋은지 그때서야 서서히 감이 잡혀 오는 것이었다.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 외엔 달리 답이 나오지를 않는다.
쉰세대와 신세대의 차이점이 뭔지 아느냐고 누군가가 우스개로 물었던 적이 있었다.

노란색을 보면 무슨 생각이 나느냐고 물었을 때
쉰세대는 단무지라고 했고 신세대는 바나나라고 했다지...........

신세대는 쉰세대가 다가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쉰세대는 신세대가 지나가지 않을거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현재를 손안에 움켜쥐고 과거로도 미래로도 내 보내지 않으려고 하는 악착을 떠는 모습이 은근 슬쩍 노출이 될 때가 많다.
나는 안 늙고 나는 나이를 먹지 않을 것이다라는 착각으로 시간을 제자리에 묶어두려는 욕심은 나이가 들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 같다.
오죽하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시간도 나이만큼 속도를 낸다는 정비례법칙을 인용할까.
십 년만 젊었으면 하지말고 나보다 십 년 연장자를 보는 눈을 가져주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십 년 연장자들이 나를 보면 하는 소리가 있다.
'내가 당신 나이만 되어도 하지 못하는 게 없이 다 할건데........'
욕심이 앞지른 거짓말이다.
그들은 십 년 후에도 그런 말을 할 사람들이다.
놓쳐버린 현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잊고 사는 사람일수록 시간에 집착을 하고 욕심을 내는 게 아닐까 싶다. 


늙은 말이 콩을 마다할까. 아직은 쓰고 싶지 않은 표현이지만 거부하려는 욕심이 괜스레 부끄러워 진다.
여전히 난 젊었고 여전히 난 예전의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 허락 없이 지나치는 세월의 그 휘파람소리가 자꾸만 공허하고 조급하게 들림은 왜일까.
더듬이 잘린 벌레처럼 방향감각 잃어버리고 세월에 떼밀려 표류하는 난민은 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여름의 한 중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