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어제처럼 보따리를 챙겼다.
야외용 돗자리 두 장, 대(竹)베개 두개, 큰 타올 한 장, 물병, 카세트 라디오, 약간의 간식, 폰, 지갑 등등...
열대야가 매일 밤 기승을 부려서 잠을 청하기가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그래도 산을 가까이 두고 있는 덕에 샤워를 하고 나면 추워서 문을 닫고 있어야 할 정도로 서늘하다.
그러나 옛 속담에도 남이 장에 가면 거름 지고 장에 간다고 했으니 너도나도 떠나는 야반대열에 슬며시 끼어보기 시작한 건 3년 전부터이다.
3년 전에 두 아이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유럽에 25일간의 배낭여행을 떠난 뒤 매일 밤 안부전화를 해 왔었는데 이탈리아라고 전화를 한 뒤 일주일 동안 연락이 두절되었었다.
2002년 월드컵 축구가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탈리아에 대한 기억이 생생했는데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았다.
경기도중 이탈리아 선수들과 감독이 보여준 거친 행동, 그리고 스포츠맨쉽을 상실한 떳떳치 못한 경기에서 이미 오점을 남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것저것 주워들은 얘기에 의하면 도둑이 극성을 부리는 대표적인 나라라고 해서 잔뜩 경계를 하라고 주의를 주기도 했는데 그 나라에서 연락이 끊기고 나니 불안하고 초조해서 피가 마를 지경이었었다.
맘이 안정이 되지 않아서 남편과 둘이 나선 곳이 매일 밤 가고 있는 그 둔치였다.
이 둔치는 3~4년전인가 市에서 조성한 휴식공간인데 인라인스케이트장을 겸하고 있어서 이렇게 무더운 여름밤엔 인산인해를 이룰만큼 인기가 있는 곳이다.
작년부터 강수욕 축제를 열고 있어서 이미 메스컴에 소개 된 바 있다.
심란하고 무거운 맘으로 도도히 흐르는 물을 보고 있는데 그곳에서 아이들이 잘 있다는 안부 전화를 받고 보니 그 자리에 남다른 기억이 있어서 편한 맘으로 매일 찾게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옷과 돈을 몽땅 도둑을 맞았다고 하면서 돈을 보내 달라고 했을 때 엎어지듯 고마워 하며 필요이상의 돈을 보내주기도 했다.
하늘을 보며 누웠다.
해가 사라진지 오래되지 않은 탓에 지열이 식지 않은 바닥은 따뜻했다.
검은 하늘엔 군데군데 별이 박혀 있었고, 낮부터 바람에 끌려 다닌 흔적이 뚜렷한 구름이 검은 하늘을 불규칙하게 덮고 있었다.
갈라진 붓끝으로 획을 그은 듯한 빗살 모양이 참 보기 좋았다.
내 시야를 벗어난 곳에서 뭉쳐져 있던 골리앗의 덩어리가 스르르 풀리면서 유난스레 빛을 뿜는 별을 따라서 쫓아가고 있었다.
눈을 깜박일 때마다 별의 숫자가, 구름의 모양이, 하늘의 색깔이 변하고 있는 것 같은 착시현상이 나타나곤 했다.
사람들이 두런거리는 소리와 꾸역꾸역 밀려들어오는 차량들의 소음으로 인해서 결코 조용하게 시간 보낼 곳은 못되나 이곳에서 사람들의 땀에 절은 체취와 알콩달콩 살아가는 얘기를 귓등으로 훔쳐듣는 재미 또한 나쁘지 않다.
나이든 엄마와 장성한 아들이 다투고 있었고 그 옆에는 어정쩡하게 서있는 젊은 아낙이 보였다.
얼핏 들린 얘기를 간추려 보니 늙은 어미 떼어놓고 젊은 부부가 나들이를 나온 것 같은데
이것을 섭섭하게 여긴 노인이 여기까지 따라와서 아들에게 따지는 것 같았다.
노인네의 목청에 힘이 들어간 탓에 주위에 앉아있던 사람들의 귀가 온통 그리로 쏠렸지만 노인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있는 대로 악을 써댔다
"니들 연놈들 둘이 작당하면 내가 모를 줄 아냐?.나도 발 달려있고 눈도 있다...썩을 놈의 새끼야"
녹녹치 않아 보이는 노인네가 바닥에 가래를 뱉아 내며 젊은 아낙에게 삿대질을 했다.
또 다른 사연이 분명 있을법한 대화가 노인네 말 중간중간에 끼어 들었으나 남의 일에 너무 귀를 세우는 것 같아서 카세트에 play를 찾느라고 더듬거렸다.
히끄무레한 불빛이 그래도 버튼을 찾는데는 도움이 된 것 같다.
눈을 감고 카세트에서 쏟아내는 음률에 취해서 혼자서 흥얼거리는 새에 한참을 그렇게 실랑이하던 가족들은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
갑자기 사위가 조용했다.
내가 틀어 놓은 노래를 옆자리의 젊은 내외가 열심히 듣고 있었다.
때때로 손뼉를 치면서 따라 부르기도 했다.
이 CD에는 내가 좋아하는 가요와 팝을 혼합해서 복사한 덕에 혼식(?)을 할 수 있어서 더욱 아끼는 데 아무래도 남편 취향은 아닌 것 같다
팝송이 나오자 슬며시 엉덩이를 떼더니 한바퀴 돌고 온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지 꽤 오래 되었지만 기다려지지 않았다.
뉴스시간에 맞춰서 나타날까봐 은근히 맘이 조렸기 때문이다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재미없는 뉴스에다가 주파수 맞출 것이고 그로 인해서 난 약간의 불쾌감을 가지고 내내 떫은 표정 바꾸지 않을게 뻔했다.
고개를 옆으로 트니 가로등이 쏘아낸 불빛이 물 속에 빠진 채 번들거리고 있었고, 찰랑거리는 물소리가 때마침 흘러나온 Boney M의 'Rivers of Babylon'과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
최상의 컨디션이 하루종일 캥기었던 사소한 일들을 밀어내었다.
적당히 머리칼을 흔드는 미풍과 나를 미치게 하는 노래가 좋아서 챙겨온 생과자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발가락으로 장단을 맞추고 있는데 또 다른 옆자리에 막 진을 치고 있는 사람이 음악이 시끄럽다고 주의를 주었다.
찬물 덮어쓴 흥은 그대로 깨져 버렸고 별로 높지 않을것 같은 - 내 생각 엔 - 보륨을 낮추려다가 그대로 꺼 버렸다.
노래듣기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일종의 보이지 않는 시위였다.
여기서도 공중도덕은 필요하지만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어낸 고약한 심사가 못내 괘씸했다.
절이 싫으면 스님이 떠나면 될 것을 굳이 눙치고 앉아서 주지노릇 하려고 드니......
아무것도 담지 않은 채 하루를 마무리하려고 왔는데 여기서 티끌 같은 감정 무겁게 매단 채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10시가 가까워지니까 이슬이 내리는지 온 몸이 축축이 젖기 시작하면서 솜털이 곤두서고 한기가 들었다.
이때쯤이면 또다시 돌아갈 보따리 챙겨야 한다.
간식과 물병이 비어 버린 것 외에는 줄어든 게 없지만 맘속에 끼고 있던 일상의 찌꺼기는 말끔하게 비어 버리고 가는 수확을 거두게 된 게 매일 밤 보따리 싸 가지고 나온 보람이고 가슴 뿌듯한 마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