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의 사람들이 나를 보고 대하기가 껄끄럽다고 한다.
좋게 말하면 대하기가 어렵다는 얘기겠고 나쁘게 말하면 대하기가 편하지 않다는 얘기다.
나의 어느 부분이 남에게 그렇게 각인이 되어 있는지는 몰라도 그 소리를 듣는 순간은 익모초 씹은 기분이었다.
문협 회원들과 같이 여담을 나눈 자리에서 진지한 얘기를 나눈 뒷 풀이로 우스개를 한일이 있었다.
중년의 연애를 이슈로 삼아서 멀쩡한 사람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질을 해 대는 시간이었는데...
평소에는 목에다가 빳빳하게 풀을 멕 인 것 같던 선비님의 연애론에 내 귀를 의심했다.
" 나 말입니다....정말 마누라 외에는 연애하면 큰일나는 줄 알고 속고 산 게 분해 죽겠심돠.
지금이라도 눈알에 불 부칠 사람 만나면 불나비 사랑이라도 한번 해 부고 죽었으면 원이 없겠수다."
마주 앉아있던 선배 작가는 배를 쥐고 웃으면서 나를 가르키며 한소리 던졌다.
"그럼 李작가 어때요?....이만하면.......용기 없으면 내가 중간에서 다리 놔주고......."
그러자 그 선비님은 강하게 손을 휘저었다.
'택두 없는 쏘리..내사 굶으면 굶었지 李작가는 안돼!"
그 선배가 왜 안되냐고 물으니까 그 선비님은 나를 요리조리 뜯어보더니....
"李 작가하고 연애할려고 덤비는 놈이 정신 나갔지....멋모르게 달려 들어다간 제 명에 못 죽어"
듣기에 따라서는 내가 쳐들 린 것 같지만 여자로서의 매력은 제로라는 뜻이다.
아무리 농담하는 소리라지만 뼈있는 소리에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나두 여자유..여자로 좀 봐주면 안 되남유?"
"참내..李작가의 글 읽어 보구도 감을 못 잡으면 등신 이제. 어디 손톱이라도 들어갈 여자냐구. 껄끄럽고 .....냉정하고.......단단하고..........."
이런 얘기는 초등학교 동창들 사이에서도 오래 전부터 나도는 얘기다.
동창회 모임자리에서도 난 대하기가 녹녹치 않은 껄끄러운 여자로 평이 나있다.
어떻게 보면 여자 동창들 사이에서는 시기의 대상도 될 소지가 있고 남자 동창들에게는 도도하고 건방진 친구로 가까이 다가가기엔 뭔가 거리감이 있는 이방인일수도 있다.
어느 날 모임에서 남자 동창이 만취한 상태로 나에게 도전적인 언사를 쏟아 내었다.
" 넌 말야...도무지가 다가갈 여지를 주지 않아.. 동창들끼리 욕도 할 수 있고 포옹도 하고 싶고 껴안고 부루스도 추고 싶은데..넌 안 돼 .. 왜 그런지 너에겐 그러면 안될 것 같아....눈 좀 낮춰라..제발....그 찬바람 좀 안 풍기면 안되냐?........맑은 물에서는 고기가 놀지 않는다는 거 알아둬라"
그래서 그랬을까.
친구들과 가진 유흥의 자리에서도 난 인기 없는 여자였다.
각기 붙잡고 흥을 돋우었지만 정작 내 곁에는 아무도 얼씬을 하지 않았다.
술을 마실 줄 모르는 게 결정적인 핸디켑 이었고 그러다 보니 옷매무새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으니까 술 취 한 친구들이 농지꺼리 한마디도 던지지 못했다.
동문 사이트에 올리는 내 글에다가는 맘놓고 리플도 달 수 없다고 했다.
혹시라도 좋은 글에 흠집 내서 자존심 건드릴까봐 ..
난 그런 게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했지만 친구들은 나를 편한 친구로 대하질 않았다.
나 혼자 울타리 밖으로 몰려난 것 같은, 소위 말하는 '왕따'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친구들과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서 남자동창들과 전화로 농담도 주고받고 쓸데없는 얘기로 키들 거렸지만 어느 듯 그것도 한계에 부딪히고 또다시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던 대로하라'는 친구들의 주문이 또다시 나를 울타리 밖으로 밀어내는 것 같았고 억지웃음 억지농담이 오히려 부작용을 유발하는 촉진제로 둔갑해 버렸다.
왜 나는 사람들에게 편한 사람으로 비춰지지 않았을까.
내 딴에는 그래도 차별 없이 사람 대하고 내 맘이 쏠리는 대로 무리 없는 사귐을 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받아들이는 상대방은 내 의지하고는 사뭇 다른 각도로 나를 대한 것 같았다.
내 글이 풍기는 이미지는 강하고 뾰죽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사고나 이미지 역시 글하고 일치 하다고 믿었던 게 원인의 하나고
또 하나는 후덕하고 넉넉해 보이지 않는 내 외모가 일조를 한 것 같았다.
내 글을 가지고 나를 평하는 게 가장 근접한 평가라고 보는 데는 오류가 있을 것 같아서 글의 스타일을 180도로 부드럽게 바꾸어 보았지만 이미 휘어진 이미지는 제자리로 돌아오질 않는가 보다.
봄바람같이 부드럽고 온화한 여자.
오뉴월 늘어진 수양버들같이 유연하고 쉽게 휘어지는 여자.
그래서 다가올 사람 거부 않고 모두 다 넉넉하게 포용해 주는 그런 여자.
한 가닥 실낱같은 스침에도 눈물 글썽일 수 있는 여자.
난 그러고 싶어서 나름대로 흉내를 냈는데 그건 내 색깔이 아니 모양이었다.
테두리가 선명하고 그 안에 칠해져 있는 색채도 뚜렷해서 다른 색과 섞이질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 주변에 쉽게 동화되어서 내 고유의 색깔을 잃어버리지 않는 게 오히려 나답다고 했다.
야한 개그를 올렸더니 웃지도 않고 ' 너답지 않게 뭔 개그냐?'로 찬물 끼얹었다.
내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줄어든다고 생각하니 내가 잘못 살았는가 라는 의문이 생겼다.
모든 이에게 편한 사람이고 싶었다.
누구든 등 기대고 싶은 넉넉한 사람이고 싶었다.
울고 싶은 사람 붙들고 펑펑 눈물 쏟을 줄 아는 감성적인 사람이고 싶었다.
흐트러지고 뭉개져도 하등의 이상할 게 없는 그렇고 그런 사람이고 싶었다.
살아갈수록 두리뭉실하게 깎여지고 싶은 사람이었다.
난 껄끄럽지 않고 매끄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