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끝나는 날 주섬 주섬 여장 챙겨서 며칠전부터 별러오던 '초암사'로 키를 돌렸다.
이 초암사는 전에 두어번 가봤다.
남편하고 한번, 그리고 '디딤돌' 회원들하고 한번.......딱 두번
두번 와 보았지만 차창을 스치는 주변 풍경엔 낯설기만 하다
금강산이 사계절 이름이 다르듯이 이곳 역시 계절마다 그 느낌이 다르니 낯이 설 수 밖에...
남편하고는 이때 쯤 이었고
회원들 하고는 아마 눈내리는 겨울이었지 싶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세가 너무 우아했고 깊은 계곡을 뚫듯이 흐르는 세찬 물줄기는 사철 변함이 없었다.
닭소리 개소리 전혀 들리지 않고 인적도 뜸해서 말 그대로 '절간' 이었다.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이 계곡속으로 들어오면 긴팔을 입어야 했다.
점점 계곡속으로 차 머리를 들이밀었는데....
"전에 자네하고 왔을때 그 찻집 기억나나?"
뭐라??....찻집??
남편하고는 찻집에 같이 온적이 없는데....
남편하고 여기 한번 왔을때는 간단하게 절만 돌아 보고 그냥 내려 왔는걸로 기억 하는데...
회원들하고 왔을때는 전통 찻집에서 차 마시고 茶器 한세트 산건 기억나는데...
기억이 없다고 도리질 하니까 오히려 고개를 갸웃 거린다.
"이 사람 정신하곤....그때 자네가 다기 살려고 했을때 내가 비싸서 안된다고 했잖아"
이게 먼 소리여?
말 그대로 자다가 봉창 뜯는소리고 자다가 제수씨 넓적다리 긁는 소리 아닌감?
멀뚱하게 쳐다보며 도리질 하는 나를 한심한듯이 쳐다 보며 혀를 찬다.
"허~~참, 이사람.......그럼 내가 안 한일 지어서 말했나?"
도저히 앞뒤 아귀가 안맞아서 답답하다고 저기 가슴을 치는 시늉을 하는데.......
"내가 언제 다기 산다고 했수?..그리고 그 찻집엔 당신하고 간적이 없는데"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이 '찻집' 사건에 앞뒤 안맞는 알리바이 마출려고 남편은 자꾸 기억을 상기 시켰다.
"잘 생각해봐.....그때 자네가 밖에서...... 나무계단에 앉아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 부분에서도 역시 필름이 끊겨 버렸다.
매표소 입구에서 차를 세울려다가 그냥 몰고 들어 갔다는 둥,
계곡물에 발 담그고 앉아서 다음엔 점심 갖고 오자는둥.....
법당 안에 들어가서 백팔배 할려다가 삼배만 했다는둥.....
도무지 뭔 얘기인지 머리에 쥐 나는 얘기만 한다.
법당에서 삼배 한건 기억 하는데 그때도 내 옆엔 회원들이었지 남편이 아니었다.
회원들하고 같이 삼배 하고 주지스님하고 잠시 담소한 기억도 확실히 나는데....
내가 그렇게 접힌 필름 잘라먹을 만큼 아직 기억력 세포가 죽지 않았는데 남편은 나의 기억력을 문제 삼았다.
오히려 남편의 기억력과 행적을 의심해야 하는게 지금 내 입장이다
남편은 그래도 포기 않고 열심히 그때 상황을 조목조목 짚어주는데.....
언제 누구랑 어디서 있었던 얘기를 지금 이 마당에 열심히 설명 하는지 모르겠다.
분명 나는 아닌데..........
근데.....
이 양반 하는 모양새가 여엉 수상해....
어제일도 잘 기억 못하는 양반이 수년전에 일을 어찌 손바닥 들여다 보듯이 좔좔 꿰고 있냐고..
알리바이 마추려고 온갖 소설이란 소설은 다 쓰고 있는 냄새가 슬슬 풍기고,
얼김에 뱉아 놓은 말 쓸어 담을려고 빗자루란 빗자루 다 긁어 모으는 모양새가 역역하다.
이실직고하면 용서 하겠노라고 제법 아량 넓은 예편네 흉내도 내 보았지만
남편은 오히려 화를 내었다.
'사람을 멀로 보냐고......'
그래서,
'아까 까지만 해도 남편으로 보았는데 지금은 '남의 남자'로 보인다.......'고
집밖에 내 놓으면 남의 거라며?
끝내 그 '찻집' 사건과 그날의 행적은 결론도 못 내리고 미스테리로 남았다.
나의 기억력에 문제가 있느냐, 아니면 남편의 행적에 의심을 해야 하나 였다.
눈치없는 남편은 이렇게 때때로 매를 번다.
아닌성 싶고 실수다 싶으면 슬며시 꼬랑지 내리던지........
어쩌면 두번의 방문이 실 엉키듯이 엉켜서 내가 뒤죽박죽 사실을 꼬아서 생각하고 있는건 아닌지 나 자신에게도 의심이 가지만.......
난 그래도 제법 총명하다는 소리 듣고 사는데...........ㅆ
그런데,
도대체 누구랑 왔다는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