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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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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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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마누라라고


BY 蓮堂 2004-06-30

얼마전 집을 다녀간 딸애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런데,
일상적인 안부 인사하고 약간의 아양을 떠는데 왠지 내 눈치를 살피는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무언가를 주저 하는것 같더니......
"엄마, 그런데요....뭐 하나 여쭈어 볼려고요.........."
"뭔데?"
"대답하시기 곤란 하시면 안하셔도 되고요....."
도대체 무슨 얘기를 가지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지 짧은 시간이지만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엄마는 아빠를 사랑하세요?"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지 말하는 핵심이 짚히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냐?"
"그냥요........궁금해서요......"

 아무런 이유없이 이런 뜬금없이 말 던지는 애가 아닌데 분명히 뭔가를 담고 있는 말이었다.
그 궁금증의 진앙지가 어딘지 알아야 대답을 할수 있을것 같았다.

 재차 캐묻는 내가 감당이 안되는지 딸애가 털어놓는 자초지종에 난 가슴이 철렁했다.

 딸애가 오던날 밤에 난 피곤해서 먼저 잠에 떨어졌는데 자면서 가볍게 코를 골더란다.
그때 옆에는 딸애하고 남편이 컴퓨터를 들여다 보고 있다가 그 소리를 들었는 갑다.

 내가 코고는 소리라고는 처음 들어보던 父女는 놀라서 서로 멀뚱히 쳐다 보았다는데,
남편은 내가 자는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 보더니 내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더란다.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엄마가 많이 피곤한가보다.....안하던 짓을 하네......사람도 참내....."

 그 광경이 너무 보기 좋아서 딸애가 물었단다.
"아빠는 엄마가 그렇게도 좋으세요?"
아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남편의 다음말이 딸애의 심장을 건드렸는것 같다.
"그런데........엄마는 나를 별로 안 좋아하는것 같다....."

 딸애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많은것을 생각했나보다.
부모님의 애정 전선에 뭔가 문제가 있는것 같은,
자식 눈에는 보이지 않는 실금같은 틈새가 부부사이를 위협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딸애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것 같았다.

 겉으로 보기엔 다정해 보이는 부모님 같은데
성큼 성장한 자식 눈에는 예민하게 잡히는 티가 보였나 보다.

 딸애의 속깊은 정이 담긴 걱정스러움에 솔직하게'그렇다'라고 대답할 자신은 없었다.
그러나 '아니다'라고 대답하기엔 미지근하고 윤곽이 또렷하지 않은 '묵은정'이 있었다.

 남편은 결혼한지 스무해가 더 지나도록 변함이 없는 태산같은 무게를 지닌 사람이었다.
자식하고 마누라한테 한치라도 빗나간 사랑 보인적 없었다.

오히려 내 자신이 남편 주위를 겉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껏 살면서 살뜰한 정 한번 준것 같지 않았고,
흔히들 말하는 '여우짓' 하고는 담을 쌓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담담히 지켜보고 있었고, 속내를 꺼집어 내어서 왈칵 쏟은적도 없었다.
그냥 가족이니까, 남편이니까..
그렇게 사는것 같아서 때로는 미안하고 면목없어서 혼자 펑펑 운적도 있었다.
그게 남편의 레이더망에 걸려서 그런 소리를 한게 아니었을까 의심을 해봤다.

왜 그렇게 살고 있는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
가까이 다가가서 응석도 부리고 트집도 잡아보고 바가지도 긁어보고
남들 하는 짓들 반이라도 흉내내고 살면 막힘없이 편할텐데............

 처음부터 사랑으로 시작한 결혼이 아니고 '운명'으로 받아들인 나의 고지식함이
스무해를 넘기도록 깊숙히 뿌리 내리지 못한채 지표위를 기어 다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깊은정이 묻어나는 부부사이로 승화 시킬려고 무던히도 참고 살았지만
바닥 깊이 깔려있는 내 존재에 대한 강한 집착이 쉽사리 삶에  동화되질 못했다.

 그러나 난 내 운명안에 들어와 있는 내 남편과 아이들,
그 가족을 감싸고 있는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오뉴월 빨간 장미덩쿨로 지켜가고 있다.

 사랑하니까 사는게 아니고
사랑할수 있을것 같은 기대감과 희망으로 스무해를 넘게 살았다.

 그 희망이 절망으로 치달은 적은 없었기에 난 내자리 지키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이미 난 사랑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게 사랑이라는 걸 모르고 사는 숙맥은 아닐까

 항상 생각의 밑둥치에 깔려있는 의구심은 떨쳐지지 않는다.
'과연 진정 사랑해서 살고있는 부부는 과연 얼마나 될까'

 이혼율 49%가 전해주는 메세지는 무엇일까...........

전화를 끊으면서 당부하는 딸애의 간곡함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엄마.......아빠를 많이 사랑해 주세요.....저희들을 사랑하는 만큼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