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여행중에 남편에게 가장 많이 타박 받은 소리가 '튄다'는 소리다.
튄다??......튄다....
이 나이에 튀어봤자 스포트라이트 받기엔 애시당초 글러 먹었는데...
여행의 목적은 눈으로 찍어놓고 머릿속에 집어 넣은뒤 입으로 뱉아야 비로소 목적 달성을 하는데
남편은 그냥 머릿속에 필름만 저장 하기를 바랐던 거였다.
숙제할려고 화장품은 못 챙기면서도 여행수첩은 꼼꼼이 챙겨온 성의도 모르고.
(나중에 잃어 버려서 도로아미타불이 되었지만...)
흔히들 나이가 들면 궁금한것도 많고 필요이상의 알고 싶은게 많아 진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그런 주잡을 떠는건 결코 아닌데 남편은 내입만 덜썩 거리면 눈에 각을 세운다.
젊은 사람들도 그냥 입 다물고 있는데 왜 튀느냐 이거다.
세상에....나이든 사람은 입에 반창고 붙이고 죽은듯이 엎어져 있으라고?
무슨소리.....
내가 해 가지고 가야 할 숙제가 산더미인데.
참새가 봉황의 그 깊은 뜻을 어이 알리요....ㅎㅎㅎㅎ
가이드는 나를 보고 혹시 교편 잡고 있냐고 묻길래 아니라고 했더니
고개를 좌우로 꼬면서 의혹의 눈길을 보낸다
묻는 질문이 너무 예리하고 핵심을 찝어서 그렇게 느껴 졌다고 한다.
꼼꼼이 메모하는 내 정체(?)가 아무래도 의심스러웠나 보다.
사실대로 얘기했다..숙제 해야 된다고
(동창 홈 페이지와 오라버님 홈 페이지에도 올려야 했다)
처음부터 솔직하게 털어놓고 보니 묻지 않은 부분까지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하는걸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다른 사람보다도 훨씬 더 많은것을 알게 되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것 같았다.
가이드랑 붙어 다니는게 아무래도 남편 눈에는 언잖아 보였나 보다.
그러다 보니 내 행동 하나하나에 메스를 들이대는 거였다.
괜히 남의 이목에 클로즈업 되지말고 없는듯이 조용히 있길 바랬다.
오래 묵은 헛간의 그 쾌쾌한 곰팡이 냄새를 남편은 여태껏 달고 있는거였다.
적극성은 말리지 않겠지만 그림자 처럼 움직이라는 거였다.
"당신,..이빨없이 고기 씹을수 있어요?"
"왜 못 씹어?..속담에도 있잖아..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잇몸으로 씹는게 오죽허까??"
"그래도 씹히잖아..."
남편은 때때로 이런 억지를 쓸때가 있다.
남편은 남 앞에 두르러지게 나서는걸 제일 못 마땅해 한다.
그렇다고 뒤 쳐지는걸 바라는건 아니지만 없는듯 있는듯 그러길 바라는거였다.
부부모임에 가도 난 항상 한켠에서 숨 만 내쉬고 있었기에 날 기억 하는사람은 별로 없다.
남편이 가지 마라면 가지 않았고
하지 말라면 하지 않았던 피동적인 생활이 나이가 드니까 능동적으로 변하는걸 느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에서 아마 '튄다'는 걸로 보였을 것이다.
가끔씩 남편에게 얘기한다.
'당신은 내가 당신의 아내이길 바라지만, 당신이 내 남편이라는건 절대로 원하지 않는사람이다'
즉,
ㅇㅇ의 아내.......라고 해야지
ㅇㅇ의 남편..........이다 라고 하는건 쪽 팔리는 거란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 붙힌다.
영국 대처수상의 남편이 누군지 아느냐...
엘리자베스 여왕의 남편이 누군지 아느냐....
아직도 남편이 아내보다는 더 드러나야 한다고 하는데는 이이를 달지 않지만
사소한 일 조차도 남편보다 한수 위라는 걸 드러내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많은 제약을 받는다.
고까운 생각이 서서히 머리를 쳐 들지만 꼿꼿이 세울수 없는 게 내 현실이다.
혹시라도 나이 들면서 자괴감에 빠질 것 같은 남편 때문에...
여행수첩을 잃어버렸다는 걸 비행기에 올라가서 확인했다.
정수리를 얻어 맞은것 같은 아찔함에 나도 모르게 화들짝 놀랐다.
압박과 설움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꼼꼼하게 기록한 그 흔적이 사라져 버린거였다.
무슨일이냐고 남편이 놀래서 묻는데........
이실직고 했다가는 좋은 소리 못 들을것 같고......
"태국서 산 화장품 욕실에 두고 또 안 챙겨 왔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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