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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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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술꾼의 悲哀


BY 蓮堂 2004-06-29


내 주량은 맥주 한 컵이면 천당과 지옥을 수없이 드나든다.
그러나 필름이 아주 끊어지지는 않는다.
끊긴척 하고 남편에게 주사를 부릴려고 해도 그 방면엔 남편이 한 수 위다.
"이 사람아, 주정은 그렇게 하는게 아니야, 눈동자가  더 풀리고 코끝이 빨개져야 돼
그리고 했던말 또 하고, 또하고....
술 주정은 아무나 하나? 그것도 일종의 기술인데"

몇해전에 여고 동창회 망년회가 있어서 저녁 늦게까지 맥주집에서 어울렸다.
매달 모이는 동창회를 일년 가까이 참석을 못하다가 가까스로 시간을 내어서 갔더니
술잔이 집중적으로 날라 들었다.
거절을 못하고 주는 대로 넙죽 넙죽 받아먹어도 정신이 희안하게 말짱했다.
'아, 나도 이제 술이 느는구나......'
대략 너댓잔을 받은걸로 기억한다.
싸늘한 생맥주의 그맛을 그날 처음으로 느꼈다.

시간이 늦어서 먼저 자리를 뜨야했다...갈길이 멀었다.

머릿속에 이것 저것 밀어넣다보니 한시간을 숨가쁘게 달려온 기차는 종착역에서
승객들을 토해냈다.

그때, 내릴려고 일어서려고 하는데 엉덩이가 자리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다리에 힘도 없는것 같았고 속도 메스꺼웠다.
갑자기 온몸에 식은땀이 솟고, 어지럽고 눈앞에 별이 반짝 거렸다.
순간,식중독이라고 판단하면서 그날 먹은 음식을 대충 짚어보니 의심갈만한게 하나도 없었다.
마른 오징어와 땅콩,그리고 과일....암만 생각해도 막힌다.

간신히 몸을 추스리고 플랫홈을 빠져 나오는데 평소에 매끈하다고 생각했던 바닥이 왠일인지 울퉁불퉁해서 걸음 걷기가 고역이었다.
발걸음을 옮길때마다 다리의 각도가 달라야했다.

"이 길이 언제부터 이렇게 엉망이 되었지?
이렇게 되었으면 빨리빨리 보수를 해 놓을거지 공무원들 뭣들하는거야?"
혼자 속으로 불만을 쏟으면서 택시를 기다렸다.

어지럽고 토할것 같은데 택시는 좀 처럼 오질 않는다.
이럴때 남편이라도 있으면 불러낼텐데 서울 파견근무 하고있어서 그림의 떡이었다.
겨우 차례가 돌아와서 택시를 잡고 앉으니 기사가 자꾸만 흘끔거리고 쳐다본다.
'보는 눈은 있어서.....ㅎㅎㅎㅎㅎ'
그러나 왠지 기분이 유쾌하진 않았다.

현대아파트라고 짧게 던지고 눈을 감으니 그대로 땅속으로 가라앉는것 같았다.
기본요금 거리인데도 기사는 200원을 더 붙혀서 불렀다.
'저 사람이 누굴 봉인줄 아나? 더러버서.....'
평소같으면 따지고 들 일이지만 그날은 만사가 귀찮고 빨리 내리고 싶어서 부르는대로 주고 내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속이 울컥거려서 견딜수가 없었다.
'식중독 약을 지어가지고 와야 되는데...어쩌지...'
그 와중에도 걱정을 하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딸애가 기겁을 한다.
"엄마,술 많이 드셨어요?"
코를쥐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뭐?나한테 술냄새 나나?"------정신이 확 든다.

"아이구 우리엄마,이젠 술냄새까지 몰고 다니시고....지독해요."
그럼? 내가 술이 취했단 말인가?
겨우 맥주 몇잔에?
그래서 기사가 흘끔거리고...
말짱한 도로가 엉망으로 보였고? ......
200원 바가지 씌우고,,,
아....그게 바로 술취한 거였구나.

그래도 그날일을 다 머릿속에 넣고 있는걸 보니 난 아직도 프로의 길을 가고 있진 않았다.

그날 이후로는 맥주생각만 하면 어지럽고 메스껍고 ......
(그러나 누가 술 사주다고 하면 따라는 가 준다..... 안주 집어 먹을려고...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