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명절만 되면 되짚어 생각 나는게 있다.
흔히들 명절이면 조상님을 기린다는 거창한 슬로건 아래 흩어졌던 가족들 내지는 가까운 친지들이
한지붕 밑으로 몰려 든다.
오랜만에 사람사는 집 냄새를 풍기면서 쌓였던 얘기들로 양념을 치고 고명을 얹는다.
유쾌하고도 반가운 인사들로 북적될때 내 생각은 엉뚱한 곳으로 내달았다.
이런날은 좋았던 기억 보다도 힘들고 서러웠던 기억들이 자꾸만 고약을 떨었다.
내가 결혼하고 시집에 들어갔을때 가장 겁을 준 분이 시조모님이셨다,
말 그대로 그분의 서슬은 날이 선 망나니 칼 보다도 더 무섭고 예리 했다.
내 일거수 일투족에 촉각을 곤두 세우셨고 말 한마디라도 예사로 흘려 보내시지 않으셨다.
유난히 보수적이고 곰팡이 냄새 나는 집이라는거 익히 알고 왔지만
그 정도가 심해서 난 달아나고 싶었던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가장 못견디게 만든건 유난히 잠이 많은 나에게 잠없는 어른들의 취침 시간까지 한쪽 무릎 세우고 앉아서
옆에서 말벗하며 끝까지 자리를 해 드린 뒤에 불을 끄고 일어나는 거였다.
행여 피곤한 기색이라도 보일까봐 내 살 내가 꼬집어가면서 자정을 꼬박 넘긴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내행동 내 언행에 혹여라도 티를 잡히면 친정 부모님 욕 먹일까봐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이었다.
그래서 쓴맛도 달다고 해야 했고 싫어도 좋다고 해야 했다.
실정 모르는 남편은 내 생활이 다 만족하고 다 좋은걸로 착각 한게 제일 서러웠다.
그도 그럴것이 하루종일 나가 있는 사람이 뭘 알고 있겠냐만...
그래도 어느정도는 감을 잡고 다독여 주었으면 서러운 기억이 스무해를 넘기도록 머릿속을
헤집어 놓지는 않을텐데..
설을 쇠고 새배를 드릴때 또한번 경악을 해야 했다.
부모나 삼촌은 방안에서 아예 절을 못하고 마루에서 예를 올려야 했고
당숙부터는 방안에서 예를 올리도록 한것이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번이나 드나 드시는 집안 어른들이 오시면 오실때마다 절을 올려야 했다.
밥하다가 빨래 하다가 아이 재우다가...
언젠가 헤아려 보니까 하룻동안에 열한번 이었던 기억이 난다.
제사 참여는 여자들도 모두 하게 하였고
조상님께 술잔 올리는 특혜는 맏며느리인 나만 올리도록 하신게 그나마도 내 자리를 확인 시켜 주었다.
언젠가 제사 음식을 장만하는 가운데 시할머님 눈에 들지 않은게 있었다.
가타부타 말씀 안하시고 그대로 수채구멍에 쏟아 버리셔서 밤을 새우며 다시 만든 기억,
송편을 빚는데 손가락 자국 나게 만든 음식 제사상에 올린다고 벼락을 내셨고,
시조부님 제삿날에 실수로 밥 두그릇 올렸다가 며칠을 빌어야 했다.
시집 오실때 몸종까지 데리고 오셔서 세숫물 까지도 방안에 들여놓고 아랫 사람을 부렸으니
그 서슬에 대항할 사람이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조금 언짢은 일이 있으면 며칠을 방문 걸어 놓고 단식에 들어 가시니까 온 식구가 방문앞에
꿇어 엎드려 빌고 빌어야 겨우 문을 열고 대면을 하신 어른이셨다.
그뿐만 아니었다.
음식이 입에 안 맞으면 굶거나 밥상이 그대로 부엌 바닥으로 박살이 나야 했다.
그러다가 다시 올리면 이번에는 음식을 한 그릇 안에 몽땅 쏟아부어서 개밥그릇에 던져 버렸다.
시어머님은 그래도 내색 않으시고 끝까지 최선을 다 하셨지만 난 도저히 이해를 할수가 없었다.
시조부님께서 독립 운동을 하시다가 옥고를 치루시고 그 후유증으로 세상을 뜨셨지만
그 자료를 찾지 못해서 우리 자손들은 아직도 유공자 가족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할머님은 그것이 가장 큰 소원이셨지만 끝내 뜻을 이루시지 못하시고 돌아 가셨다
아흔 하나에 세상을 뜨실때까지 천성을 그대로 가지고 가셨으니 자손들 맘 고생은 남은 모른다.
여자들은 흔히 맵시, 마음씨, 솜씨를 갖추면 나무랄게 없다고 했지만
시할머님은 다 갖추셔도 마음씨 만은 갖추시질 못해서 항상 안타까웠다.
그 어른의 바느질 솜씨 음식 솜씨는 따라갈 사람이 없었다.
그러기에 어느 누군들 하는일이 맘에 드실리가 없다.
맵시도 춘향이 저리가라였고 글 솜씨도 뛰어 나셨다.
머리맡에는 항상 고서(古書)와 지필묵이 놓여 있어서 생각나시면 무언가를 쓰시고 읽으셨다.
그래서 한번 여쭈어 본적이 있었다.
뭔지는 모르는데 '사돈지'라고 하셨다.
그리고 흥부전이라든지 춘향전 같은 고전에 심취 하셔서 읽고 또읽고 그러다가 글로 다시 옮겨 쓰시고.
이젠 나이가 드니까 그 어른에 대한 시각이 조금씩 달라져 가고 있었다.
버릴건 잊기로 했고 훌륭하셨던것은 추려서 되짚어 생각나는 거였다.
성정은 불 같으셔도 여자로서 배워 두어야 할 점이 너무 많았다는 건 인정 하고 싶었다.
그 어른 제사때 잔을 드리면서 항상 비는 게 있었다.
맵씨 솜씨 만큼은 제발 남겨두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