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여행에서 돌아오는 기분은 여엉 꿀꿀하다.
모처럼 만난 친족간에 좋은 얘기 보다도 살벌하고 안타까운 얘기에 내내 마음이 쓰인다.
시외갓집 형님이 곧 별거에 들어 간다는 거다.
스무해를 넘게 거듭되는 고부간의 갈등이 드디어 용암을 분출하며 폭발하고 만 것이다.
안방에서 듣는 얘기와 부엌에서 듣는 얘기는 분명 문턱 보다도 더 높은 차이가 있다.
我田引水로 서로 자기 방어 내지는 자기 합리화,정당화에 목소리 높이다 보니
급기야는 '별거'라는 비장의 카드를 들이댄 것이다.
문제는 교통정리에 어정쩡하게 대처한 그집 남편에게 화살을 돌리고 싶었다.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얼치기 줄다리기 흉내라도 내었으면 그래도 모양새에 점수를 주고 싶었는데 숫제 아내에게는 한치의 눈과 귀도 열지않고 어머니에게만 눈이 먼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부부싸움에 언어폭력이 등장했고 나중에는 구타로 이어지다보니
남편이 '짐승'으로 보여서 더이상의 부부생활은 할수없이 파경을 맞고 말았다.
가장의 자리는 참으로 막중하다.
내가 느낀건 ,
가장은 어느 가족에게도 -부모, 자식, 아내, 형제 - 눈이 멀어서도 안되고 저울대가 기울서도 안된다는 거다.
중심을 꼭잡고 상하좌우의 위치 파악과 근거리 원거리 조정에 탁월한 능력이 따라야 한다.
그 집의 불화 원인은 고부간의 갈등과 어려운 경제여건이었다.
거듭되는 사업실패로 온 가족이 얼음구덩이에서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던 때다.
가족간에,어렵고 힘들수록 감싸주고 보담아줄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깡그리 잃어 버렸다.
修身濟家후에 治國平天下라고 했다.
스스로를 다스릴줄 모르니 가정이 흔들렸고 나아가서는 사회생활에도 그 영향이 미치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면서 환경적 동물이다.
환경에 따라서 각기 다른 색깔을 띄는 카멜레온의 그 변신을 닮을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처세술이 미처 생활속에 자리 잡지 못하고 부초같이 떠돌다 보니 막다른 골목을 맞고 말았다.
세세한 내용은 다 알수는 없지만,
문제는 폭력이라는 행위 앞에서는 무슨 명분이든 그 어느것도 정당화 될수가 없다는 거다.
'여자는 꽃으로도 맞을수 없다'고 했는데......
남편이 원인제공 운운 하기에 발끈 하면서 대들었다.
"이양반아...원인 제공 한다고 다 때려요?...입은 놔 뒀다가 죽 쑤어 먹을거유?..말로하면 덧나나?"
그래도 남자라고 그집 남편을 두둔하기에 입에 거품을 물고 혈압을 올렸다
애궂게 한마디 거들었다가 나에게 된통 쥐어박힌 남편은 머쓱하게 한마디 한다는게
"이봐, 자네는 아직 나한테 털끝하나 뺨한대 맞은적 없잖아?"
"맞아??......내가 왜 맞아야 되는데?......누가 맞고 살어?........"
내 눈꼬리에 가파른 각이 곤두박질 쳐댔다.
"때리면 매가 튈까?"
남편은 무슨 생각으로 내 비위를 슬슬 긁는지 자청해서 매를 번다.
"그래요 ..매가 안튀지....앞으로 당신도 나한테 원인 제공하면 맞는수가 있는줄 알어요.
여자만 맞고 살란법 없수....법보다는 주먹이 가깝다고 그러대?"
주먹을 코앞에 들이대며 공갈협박을 했다.
농담반 진담반의 내 주장에 남편은 긴가민가로 쳐다보고 있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한바탕 설전을 벌이고 나니 왠지 회색빛 서글픔이 울컥 치민다.
항상 약자의 위치에서 아직은 구석으로만 내 몰리고 있는게 우리 아내들의 현실이다.
요즘은 맞고 사는 남자들도 더러 있다고는 하지만.....小數에 불과하다.
小數는 多數를 잠식하지 못한다는 진리는 불변의 법칙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