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며느리는 봄볕에 내 보내고 딸은 가을볕에 내 보낸다'
'팥죽 먹은 그릇은 딸에게 씻도록 하고 찰밥먹은 그릇은 며느리에게 씻게 한다'
딸과 며느리의 차이를 가장 적나라하게 대변해 주는 말이다.
힘겨운 명절을 보내고 나면 가장 밑바닥까지 끝끝내 남아있는게 이 부분이다.
며느리는 어느 누구든지 딸이다.
시집에서는 궂은일은 몽땅 맡아서 해야만 하는 씩씩한 일군이어야만 하지만
친정에서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금쪽 같은 딸들이다.
출가외인이라는 족쇄를 양발에 끼우고 평생을 남의 집(?)에 살다가 뼈를 묻어야 하는
부계사회가 낳은 불평등 불합리한 조약이다.
엄마의 엄마도 그러했고, 그 엄마의 엄마도..................
종족번식을 위해서는 그 자리가 얼마나 위대하고 고귀한가...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그런데.....
명절이면 열받는 - 고귀하고 위대한 며느리들 어디 한둘인가.
힘겹게 일하는거야 도리를 해야하는 의무조항이라고 치자,
그 의무조항 아닌것이, 힘들게 명절 지내고 나면 가정불화 내지는 시집식구들과 갈등을 빚어내고 있으니
이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나도 머지않아 친정 엄마의 자리 시어머니의 자리 다 차지할수 있는데
친정엄마 노릇은 그런대로 할수 있을것 같은데 문제는 시어머니 노릇이다.
요즘은 며느리가 칼자루 쥐고 있다고 어른들은 푸념을 하시지만
막상 온 식구들이 모이는 명절이면 그 칼자루는 시어머니가 자연 스럽게 쥐게된다.
흩어져 있던 자식들 얼굴 보기란 쉽지않은게 요즘 세태이다.
명절이나 길흉사가 아니면 평생을 두고도 볼수 있는날이 열손가락 안에 들까말까 한다.
교통이 급속도로 발달하여 전국이 일일 생활권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모형제를 만나는일에 우리는 무디어져 가고 있는게 사실이다.
문제는...
부모형제 보고 싶은것, 또 자식들 보고싶어하는 부모님들....인지상정이지만
딸은 친정 부모 인사 드리러 오는데 며느리는 친정에 보내 주지 않는다.
我田引水란 이럴때 쓰는 말인가..
여자라면 누구나 친정엄마 시어머니 그리고 딸과 며느리의 자리를 다 병행하고 있는데
영원한 시어머니도 없고 영원한 시누이도 없다
그 자리가 그 싯점에서 머무는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친정엄마의 자리보다도 시어머니의 자리를 고집하고 있으니 고부간에 갈등이 어찌 없을수 있을까.
결혼초에는 명절만 되면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친정 식구들이 기다리는건 뻔한데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이미 명절 전에 남편하고 약속이 되어있었지만 칼날쥔 몸이 무슨 빽으로....
첫해는 자연스럽게 보내 주시는데 그 다음해 부터는 영이 떨어지지않았다
딸들이 오니까 안된다는게 시어머님의 분부이고 보니 눈물만 삼킬수 밖엔 없었다.
그때 문득 느낀게 있었다.
아....올케도 친정엘 가야 하는데 내가 가면 친정엘 못 가겠구나....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갈려고 애쓰지도 않았더니 올케가 눈치를 채고 미리 전화를 해 주었다.
"고모, 난 명절지나고 친정가도 되니까 올수 있으면 꼭 와.난 친정이 가깝게 있잖아.
나 때문에 못오는것 같아서 많이 서운하네.어머님 뵙기도 민망하고...."
속깊은 올케의 배려에 난 부엌 한 켠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며느리를 배려해서인지 친정엄마는 절대로 오라는 전화를 하시지않는다.
작년부터는 어른들이 안계시니까 오고가는게 내 맘대로가 되어렸는데 이상하게도 맘이 한구석
서운한 맘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어른들 간섭받고 눈물 흘릴때가 좋았던건 무슨 조화속일까...
고부간에 지켜야 할 십계명중에는 이런 귀절이 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하고
며느리는 그 시어머니를 친정엄마처럼 생각하고 모시라'고....
그렇게만 된다면 분명 교차점은 있기 마련인데.....
고부간은 어쩌면 영영 손 맞잡을수 없는 평행선이 될지도 모른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그 틀에서 쉬이 벗어 나기란 어려운게 아닐까.
서로간에 양보와 배려..그리고 존중과 사랑이 따른다면 그리 먼길도 아니건만
자꾸만 험한길인줄 알면서 돌고 또 돌아서 가고 있는것 같다
어머니들이여..............
우리만이라도 지름길 택해서 쉽고 편한길 가 보시는게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