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그 앞에 서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는 심한 몸살을 앓는다. 낑낑거린다. 무엇인지도 모를 슬픈 그것들이 내 몸에 달라붙는다.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그 병은 쉽사리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겨울 묵은 때를 벗겨내며 새 계절의 영혼, 문을 두드린다.
봄이 오는 들판. 살아온 만큼의 무게가 아니라 아직 달성하지 못한 꿈들이 많다. 이젠 모두 떠나보내리라
몇 년을 타성으로 무덤 같은 권태로움을, 모순을 부둥켜안고 침묵했던 나날이 극도의 소화불량으로 돌아왔다. 하루하루를 견디기란, 연명해간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거나 절벽위에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롭다거나 하는 것.
그 엄청난 갈증, 정신적 갈증, 지금껏 버텨왔다는 것이 용하기만 하다. 반백이 되어버린 머리칼. 낯선 것들이 이젠 낯익은 슬픔이 되었다.
날마다 나를 배반하는 것들은 왜 그리 많은지. 돌이라도 녹여버릴 것 같았던 위장, 이빨. 시나브로 차가운 배반을 일으킨다. 야멸스런 것들. 내 몸의 부속품들이 망가지며 미완의 슬픔으로 타래를 감는다. 망가지거나 배반을 하는 것들이 어디 몸뿐이냐.
삶을 완성하기란 어렵다는 것처럼 그것이 꼭 슬픔이 아니더라도 완성을 못 이룬 것에 미련을 두고 싶지 않다.
우주공간의 수억 만개 별 중 하나인 지구위에 헤일 수 없는 생명체가 살고 있다. 생명체가 모두 욕심이 많은 것은 아니라 해도 욕심으로 인해 겪는 고통은 많다. 이젠 조금 더 욕심을 줄여야한다. 늦은 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 올씩 욕심을 풀어내며 청정한 마음이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변하지 않기를.
세상에 난 것부터가 죄가 된다는 말처럼 큰소리내지 않고 말을 줄여서 하며 부끄러운 일에 외면하며 살다가기를 맘속으로 기도한다.
내 허물을 충고해 주는 사람을 고맙게 여기며 나와 더불어 살고 있는 자연의 생물들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이 죽는 날까지 변치말기를.
어리석음의 무게를 낮추는데 스스로를 감시하는 마음으로, 내 마음속 어둠을 밝히는 작은 촛불 한 개가 꺼지지 않기를.
낮은 곳을 바라보며 헛되지 않는 나날이 이어지도록. 주변의 작고 소중한 것을 찾아내어 그 안에서 행복을 만난다면 이보다 좋은 것도 없을 것.
아직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부딪치지만 봄 향기가 스며온다. 많은 것을 본다고 하여 봄이라 한다는 말처럼 봄 앞에 가슴은 설렌다. 봄 처녀처럼.
이 봄, 정갈하게 닦인 영혼 속에 나를 들여놓고 나들이를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