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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사소한 능력을 사고파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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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나


BY 낸시 2022-01-18

남편은 그만 은퇴하고 한국에 가서 살자고 한다.
나도 그럴까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쉽게 그러자고 동의하기 어렵다.
이 나이에 일손을 놓으면 다시 잡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은퇴는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결정할 문제라는 생각을 한다.

중학교 수학교사를 하다 그만두기로 했을 때,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다.
오히려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는 듯 홀가분했다.
집에서 아이들 돌보고 살림만 할 수 있다니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그런데 막상 전업주부 노릇을 하다보니 지루하고 심심했다.
뜨게질하고 옷 만들어 입고 책 읽고 정원 가꾸고 남들이 보긴 혼자서도 잘노는 여자였다.
오죽하면 별명이 혼자서 잘 노는 여자였다.
하지만 그것도 몇 년이지, 아이들이 자라고 나니 직장 생활하던 때가 그리웠다.
다닐 때는 그닥 좋아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던 직장이었음에도 그랬다.
아침마다 출근하는 남편이 부러웠다.

사십 후반이 되어 이민을 하고 생계를 위해 일을 시작했을 때 힘들었다.
이십년 가까이 집에서 빈둥거리다 갑자기 일을 하니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다.
그렇게 다시 이십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힘들더니 지금은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힘들지 않다.
신체적으론 그 때보다 훨씬 튼튼하고 강해졌다고 느낀다.
일을 하기 위해 운동을 했더니 팔도 굵어지고 종아리도 허벅지도 단단해졌다.
주문서를 읽기 위해 눈운동을 했더니 눈도 밝아졌다.
백발과 주름이 생겼지만 내 삶은 오히려 활기가 생겼다고 생각한다.
신체적인 활기만이 아니고 삶 전체에 생기가 돈다는 말이 더 맞다.

나는 스스로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이 넘치는 부모 밑에서 자랐고 학교에서도 선생님 사랑을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열살 때부터 좋아하던 남자하고 결혼했고 시부모 사랑도 받았다.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도 형제자매간에 우애가 좋아서 조그만 다툼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일을 하면서 얻는 기쁨이 더 크다고 느낀다.
건강한 음식을 먹게 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루도 몇번씩  듣는다.
날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꼬마손님들도 수두룩하다.
너가 바로 그 낸시냐고, 호들갑스럽게 반가움을 표시하는 손님들도 셀 수 없다.
우리 비지니스가 어떤지 건강은 어떤지 관심을 표하는 단골들도 많다.
어려서도 사랑과 관심 속에서 자라긴 했지만 지금처럼 날마다 피부로 느낀 적은 없는 것 같다.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은퇴하자고?

은퇴를 말하는 남편 말이 솔깃할 때도 있으니 주변에 은퇴한 사람들을 살펴본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은퇴하지 않고 현역으로 살다 죽고 싶다.
은퇴하면 안락한 노후생활이 아니라 그냥 죽음을 기다리는 삶이 될 것만 같다.
누가 내게 사랑과 관심을 표시할까.
자고 나면 미운 짓만 늘어나는 천덕꾸러기 노인네로 전락할 것만 같다.
일을 할 필요가 없으면 건강을 챙기는 일도 소홀해질 것 같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이미 전업주부 노릇을 해봤으니 멀리 다른 사람을 살필 필요도 없다.
젊었을 때도 일을 그만두고 사는 것이 따분하고 지루했었다.
내가 좋아하는 뜨게질 바느질 정원손질 독서 이런 것들이 재미없는 일을 하는 것만 못했다.
그런 것은 여가시간에 가끔 하는 것이 좋지 날마다 하기로는 돈버는 일이 최고다.
무소유에 공감하는 나는 사실 돈이 그리 많이 필요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 어떤 일보다 돈버는 일이 나를 더 즐겁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