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우리나라 상속세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131

남에게 신세진다는 것...


BY 낸시 2004-09-27

집에서 녹두나물을 길렀다.

시장에서 파는 것보다 아삭거리고 좋았다.

일부러 햇빛에 노출시켜 녹색 잎을 길러 끓는 물에 데쳤더니 색깔도 고운게 맛깔스럽게 보여 더욱 좋았다.

내 생각엔 분명 영양학적으로도 시장에서 파는 것보다 우수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남편에게 부탁했다.

남편의 지인인 농대교수에게 시장에서 파는 녹두나물과 우리가 집에서 기른 녹두나물의 성분 분석을 해 줄 수 있는지 물어 봐 달라고...

남편이 난색을 표했다.

남편은 누구에게 조그만 신세라도 지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 남편이 못마땅 할 때가 많다.

그럴 때면 이렇게 남편을 공격하기도 한다.

"남에게 베풀기 싫으니까 신세 지는 것도 싫어하는 거야.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닌데 베풀기도 하고 신세도 좀 지고 그렇게 살면 좀 좋아?

꼭 그 사람에게 못 갚으면 어때?

나도 되받을 수 없는 사람에게 베풀면 되는 거지...

꼭 인색한 사람들이 남에게 신세지기 싫어한다니까..."

 

내겐 위로 언니 둘, 아래로 남동생이 하나 있다.

큰 언니에게는 가슴 아픈 일들이 많이 일어나 생각할 때 마다 항상 가슴 한 켠이 아리다.

첫돌 무렵 잃어버린 첫 조카 녀석, 정말 귀여운 녀석이었는데...

사십대 초반에 혈압으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한 형부, 신생 기업에 창업 사원으로 들어 가 온갖 고생 끝에  그 회사를 키우고, 그 회사의 이사가 되어 막  고생 끝의 낙을 즐기려고 하던 찰라였는데..

대학 4학년 때 사고로 죽은 둘째아이,  언니를 닮아 영화배우처럼 잘 생기고, 공부도 잘 하고, 잘 웃는 이쁜 녀석이었는데,,,

직장암으로 투병 중인 언니, 그 치료가 죽기보다 힘들다던데...

......

그 언니를 보면 무엇이든 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편안한 내 삶이 미안하기도 하다.

그런데 언니는 받는 것이 불편하단다.

형편이 어려우니 받긴 하지만 받는 마음이 그리 힘들 수가 없단다.

자기는 남에게 베풀며 살고 싶은데 그리할 수 없음이 너무나 속상하다고 하였다.

그런 언니에게 입 바른 소리를 했다.

어쩌면 언니의 가슴을 찌르는 비수일 수 있는 말을 쏟아내었다.

"언니, 그것은 오만이야, 언니가 뭔데 언니는 남에게 베풀기만 하고 받으면 안되는거야?.

언니는 남에게 베푸는 기쁨을 주면 안돼?"

언니가 말이 없다.

나는 사과할 맘이 없다.

언니가 좀 편안한 마음으로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왜 사람들은 남에게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고 신세 지는 것을 싫어할까?

내가 언니를 공격한 것처럼 오만일까?

아니면 남편을 공격한  것처럼 인색함일까?

언니랑 남편을 공격한 나는 남에게 신세만 지는 입장이 된다면 편안한 마음으로 받을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지금이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니 이런 생각도 하는 것이지만 정말 받기만 하는 입장이 된다면 얼마나 힘들까?

남에게 베푸는 기쁨을 주기 위해 내가 낮아져야한다면 그 낮은 자리에서 나는 어떤 마음일까?

어쩌면 남에게 신세지기 싫은 것은 내가 언니를 공격한 것처럼 오만도 아니고, 남편을 공격한 것처럼 인색함도 아니고, 인간이 가진 최소한의 자존심일지도 모르는데...

그 자존심마저 버린 자리, 그 자리엔 어떤 내가 있을까?

추석이다.

주는 이도 있고, 받는 이도 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