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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잠잠하다 싶더니 드디어 어젯밤에 터졌다.전쟁이...
김치를 담글려고 소금에 저려 씻어건져놓고 냉장고야채칸을 열어보니 부추가 없어 얼른 슈퍼에 다녀왔다. 마침 번잡한 저녁시간이라 계산대에 줄이 길었고,한 30분쯤걸렸을까.
얼른 김치를 담궈놓고 된장찌개를끓이고 고구마줄기를 볶아놓고,조기한마리구워놓고, 깻잎을 쪄서 칼치속젓과 함께 상을 차려놓고 아무리 기다려도 남편이 오질 않았다.
기다리다못해 남편의 핸드폰번호를 눌렀다. "뭐해요.집에 안오고.." "아까 차 세워놓고 집에 갔는데 없던데 어디갔었어? 사람이 올때되면 기다리고 있어야되잖아.여자가 어딜 쏘다니냐,나 오늘 저녁먹고 갈께"
그러면 퇴근전에 진작에 전화해주지. 더워죽겠는데 종종걸음을 안치지. 얄미운건 여전하다.좀전의 식탐이 싹 가신다. 상을 물리면서 얻으먹으러온 객 마냥 선채로 몇숟가락 떠먹고는 설겆이를 했다.
전 같으면 술을 먹고 오는 저녁같으면 오늘은 또 무슨 시비거리라도 잡힐까봐 은근히 걱정스러움이 밀려왔는데 요근래는 술을 먹고 들어와도 시비는 커녕 늙으막에사 철이나는지 우리 마누라이쁘다고 추껴세워주면서 한동안 얌전히 잘 자길래 이제는 그놈의 술주정은 끝났나보다 하는 안도감에 어제는 안심하고 테레비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딩동 소리에 얼른 눈을 떠니 1시20분이다. 문을 열자마자 눈을 치껴뜬폼이 완전히 시비쪼다. "뭐한다고 문을 늦게여냐? 뭐했어?이 여자가 군기가 빠졌어" '뭐하긴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었지. 열쇠는 폼으로 들고 다니남, 열고 들어오면 되지,자기는 손이 없나' 입안에서만 맴돌지 정작 내뱉지는 못했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오밤중에 시끄러우니 꾹참고 미안하다며 들어오라했더니 어이구! 그버릇이 어딜가나 어째 잠잠하다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까 집에 들렀을때 어딜 갔었냐며 예전의 그 주정이 또 나온다.
한번 꺼내기 시작하면 캐캐묵은 몇달전일까지 다 뱉어낸다. 그 좋은 머리 다른데나 써먹지. 가시처럼 내뱉는 말마다 축구공처럼 되받아서 차고싶지만 내 특유의 묵묵부답으로 가만히 있는다. 속은 부글부글 끓지만 지긋이 누르며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린다. 그럴때는 영락없는 나는 도인이 된다.
40분쯤 혼자서 소리를 질러대다가 지쳤나보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지 벙어리마냥 꾹 입다물고 있는 마누라를 보니 싸움도 안되고,재미도 없나보다.
전직이 야구선수인지 옷을 하나씩 벗어 던진다. 전같으면 나도 던지는 방향따라 잡으러다니는데 이제는 그짓도 하기싫어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여기저기 옷을 벗어던져놓고 큰대자로 잠든 남편을 마음같아서는 아들놈에게 하듯이 한대 쥐어박고 싶다. 아이들이 둘이면 남편까지 합해서 셋을 키운다던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
양복윗도리는 현관앞에.양말은 화장실앞에.바지는 싱크대앞에,와이셔츠는 안방문앞에.넥타이는 빙글돌리다가 던진게 테레비뒤로 넘어간다.에고,저걸 집어낼려면 고생하겠구먼. 엄마한테 투정부리는 아이같다. 50넘은 나이에 엉석을 부리는건지 원...
아침이 되어도 여전히 투덜거리며 대문을 꽝 닫고 출근했다.저러다가 문이 부서지지. 얼마전에 남편의 '앞으로는 이뿐마누라를 절대 괴롭히지 않겠다'고 맹세(?)하던걸 믿고는 긴장을 풀었던 나는 그 평온함이 완전히 착각이라는걸 오늘 아침에사 깨달았으니....아이고, 내 팔자야.
연일 계속된 무더위가 장대비속으로 사라지고 비가 들쳐도 문을 활짝열어놓고 빗속으로 끓어오르던 울화를 던져버렸다.속에 넣어둬봤자 병만 만들거고 한두해 겪는일도 아닌데 뭘 새삼스레....
"따르릉~ 어이! 마누라.갑자기 손님이 와서 오늘 저녁먹고 갈께" ".........쾅" 다시 전화가 왔다. " 아, 이사람이 왜 말을 안하고 끊냐. 미~안하다.오늘은 빨리 들어갈께"
출근전에 미안하다는 한마디만 해주면 밤새 속상했던 마음이 눈녹듯이 녹을건데 진짜 밉상이다.
자기가 내뱉는 막말과 행동들은 언제 그랬냐며 다 잊어먹고 내가 한말들을 귀신처럼 기억하고 있다가 두고두고 써먹길래 웬만해서는 책잡힐 말을 삼가하고 속으로만 꾹꾹 눌러두는데 어제는 잘 참았다 싶다.
푼수처럼 내스스로에게 후한 점수를 준다. 또 이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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