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감을 속이지 못하나보다.
갈수록 게으름이 몸에 배어 집안의 모든 집기들은 이사올 때 자리를
정하고는 그냥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붙박혀있다.
예전같으면 마음에 들지않으면 가구밑에 담요를 깔고 이리저리 옮기고
작은 소품들도 수시로 자리바꿈을 했지만 밑바닥에 본드를 붙혀놓은 것처럼 그냥 그 자리에 다 고정되어있다.
계절이 바뀌면 옷장, 설합을 열어 그 계절에 맞게 손이 가기쉬운
설합으로 바꾸기도 했는데 이사오고는 그냥 그대로 두고,
여름이 와도 구석에 넣어놓은 여름옷을 팔을 쭉 뻗어 꺼내입고
가을이 와도 설합을 열어보고는 에이 그냥두지 설합을 닫아버린다.
일주일 남은 추석에도 그냥 음식준비만 해야지 마음을 굳혔더니...
지리했던 여름이 지나갔건만 더위는 끈질기게 남아 선풍기를 그냥두었는데
며칠 전부터는 켜지않아도 될 만큼 가을을 느끼게 되었다.
한쪽으로 밀려난 선풍기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 돗자리도 구석에서 꾸부정하게 서서 내 게으름을 흉 보고있다. 그냥 모른 채 할려니 뒤꼭지가 당긴다.
명절이면 형제들이 다오고 우리 아이들도 오고 ,
올 봄에 아기를 낳은 조카며느리까지 오면 방 세개,
마루까지 온통 이부자리를 펴야하는데 자꾸만 발걸음이 더듬거린다.
솔직한 마음은 명절이 없으면 좋겠다. 계속 서서 일을하다보면 다리도 저리고
어깨도 내려앉는것 같지만 친척들이 머물다 갈때까지 표를 낼수없어 억지로 참다보면
명절휴유증이 심각하여 몇날 며칠을 끙끙앓는다.
에미된 이기심은 아이들이 와서 좋고 친척들이 오는건 싫고, 벌 받을 나쁜 마음이지만
날이 갈수록 명절증후군이 심각해진다. 이를 어쩐다.
한 집안의 며느리로 들어왔으니 그 임무는 잘 해야지 싶지만 명절이 다가오는것이 괴롭다.
다음에 내 며느리를 보게되면 이것만큼은 대물림을 해주기 싫다고 다짐해 보지만 별도리가
없을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간소하게 하도록 해야지.
어제 다 본 신문을 집어들고 장농문을 열었다.
설합을 다 빼놓고 신문을 설합바닥에 깔고 옷정리를 시작하자 불붙은 도화선이 되어
연이어 앞,뒤베란다를 치우고 창고를 뒤지고, 방마다 아이들이 손이 갈 물건들도
위도 다 올려두고 벽에 걸린 옷가지들을 세탁기에 밀어넣는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를 밀대에 끼워 서서 쓱쓱 딲던 마루도 기어다니며
구석구석을 꼼꼼히 다 딲아내었다.
아침부터 시작한 대 청소는 5시간동안이나 계속된다.
무릎이 아프고 허리를 겨우 펴니 손이 덜덜 떨린다.
허기가 졌다는 신호탄이다. 찬밥을 꺼내 남은 나물을 넣고 비벼먹고 나니
눈이 번쩍 뜨인다. 참 미련한 여자다.
커피를 한 잔 타서 마시면서 오전내내 대 청소를 한 집안을 둘러본다.
어! 그제나 어제나 오늘 아침 청소전에나 지금 청소 마친후에나
변한건 없다. 바닥을 쳐다보니 작은 얼룩들이 없어지고
방이 조금 정리된 것같기도하고 창고안이 가지런해 졌지만
내내 손목이 아프도록 청소한 흔적이 드러나게 표가나지 않는다.
언젠가 퇴근한 남편에게 오늘 대 청소한다고 너무 힘들었다고 상을 바라는
아이처럼 호기를 부렸더니 뜨악한 눈으로 하나도 변한것 없다고 했을때의 허망함.
주부도 직업이라고 자부했지만 매일 똑같은 일상을 되풀이 해봐야 어디하나 표가나지않으니
그 후로 대충 정리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 치우곤 했다.
설합안을 열어보고 가지런함에 혼자 위로하고, 구석구석 깨끗함에 만족하고
베란다에서 환한 얼굴로 쳐다보는 주홍빛 제라늄에 활짝 웃음을 보낸다.
초등학생처럼 청소 검사받을일은 없지만 내가 나한테 백점을 주고싶다 오늘은.
내일은 냉장고안을 뒤집어 정리를 할 참이다.
먹다 남으면 비닐에 둘둘말아 냉동실,냉장실로 밀어넣는 게으름때문에
냉장고안에서 비좁다고 비명이 들리지만 못들은 채 그냥 열었다 닫았다 했지만
장을 봐서 넣어둘려면 천상 죄다 꺼집어내어 대 청소를 해야된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추석만 같아라'는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추석장꺼리를 쪽지에 꼼꼼하게 적어 내려간다.
조기,민어,도미,산적꺼리.나물, 밤 대추, 약과, 고기, 튀김꺼리....
어느새 마음이 바빠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