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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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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며


BY 우체국 2004-02-20

               사진을 보며

 

   입춘과 함께 찾아온 비 내리는 날, 한가함을 누리느라 책장을 정리하다가 앨범을 보게 되었다. 넘겨지는 사진마다 만나는 사람들이 그립기만 하다.
그 속에 한 장의 사진이 나를 잡아끌었다. 짧게 자른 머리를 바글바글 볶은 머리를 한 다섯 살 먹은 여자아이가 나라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 때만 해도 세상이 가난했을 것이고 우리 집도 그리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다고 들었는데 퍼머를 했다는 사실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한가지 생각은 어머님이 당신 마음에 들게 하기 위해 머리를 퍼머를 시켰거나 아니면 아이가 유별나게 영악하여 퍼머를 해 달라고 졸라서 했거나 아니면 미장원집 주인이 공짜로 해 주었거나 이리 저리 생각을 했으나 알 수가 없다. 


   그전에도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봄을 재촉하는 창 밖의 기후 역시 내 마음처럼 궁금한지 창을 두드리고 있다.그 이유를 오래 전에 아버님은 돌아 가셨고, 어머님은 3년이 지났으므로 물어 볼 사람이 없다.


   오후에 목욕탕에 갔다. 반신욕이 유행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다. 나도 반신욕을 하려고 몸을 반만 담그고 있었다. 20분 정도는 있어야 하므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땀이 흐르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머리를 바글바글 볶은 여자아이가 할머니와 엄마랑 들어 왔다. 아까 본 그 사진 속의 내 모습과 똑 같았다. 저 아이는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머리를 했을지 궁금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 아이의 엄마에게 물어 보았다. "예쁜 딸 머리 퍼머는 어떻게 해 주게 되었어요?.그러자 그 아이의 할머니가 옆에서 듣고는 자랑스럽게 목소리 톤을 높여 "우리 손녀가 어찌나 멋을 부리는지 할미가 미장원에 갔는데 따라와서는 꼭 그렇게 해달라고 졸라대서 했지요"라고 말했다.


    또 한 장의 사진이 생각난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 둘이 세 살 다섯 살 일 때 서울 자연 농원에 가서 찍은 사진이다. 거기에도 나는 다시 바글바글 볶은 머리를 하고 아이들과 서 있다. 몽땅 각시 같기도 한 것이  다섯 살 때와 너무나 흡사한 모습이다. 이때 머리를 볶은 이유는 잘 기억하고 있다. 그 때는 아이들 둘이 사내아이 였으므로 그 아이들 뒤를 따라다니기 바빠서 내 몸을 치장하는 일은 생각도 못 할 형편이라 긴 머리를 고집할 수가 없었다. 계속 자라는 머리인데도 여자들은 머리에 대해서는 큰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이를 없으면 아이 얼굴을 찌르기도 하고 하여 잘랐는데 그도 어색해서 퍼머를 했더니 짧게 올라가 몽땅 머리가 되었던 것이다. 그때 그 머리를 보고 어머님이 그랬었다 "네가 어렸을 때도 그렇게 짧게 자른 적이 있다"라고 그러나 왜 잘랐는지 어머님께 물어 보지 않은 것이 오늘까지도 궁금하다. 그런데 살면서 여자들이 얼마나 머리 때문에 고민을 하는가! 남편과 싸워도  자르고 싶고, 계절이 바뀌어도 자르고 싶다. 나이가 먹는 다는 생각이 들어도 자르고 싶고, 앞에 가는 여자의 머리가 지저분해 보여도 자르고 싶다.


  다섯 살 때 자른 그 머리는 어른들이 하는 것을 모방하고 싶어 그랬을 것이고(목욕탕에서 만나 그 아이처럼)아들 둘을 낳고 자른 머리는 아이들을 위해 잘랐고, 엄마이며 주부라는 이름이 머리를 자르게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