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는 비가 오면 떠오르는 친구가 둘 있습니다.
아주 어릴적부터 함께 해온 한 친구.
유난히 얼굴이 희고 키가 컸던 그 친구는
엄마 심부름을 갈 때도 혼자는 외로워서 늘 저를 찾아왔습니다.
자기 집보다 한참 꼭대기에 있던 우리 집까지 숨을 헉헉거리며...
중학교때도, 고등학교때도 그 친구는 수업이 끝나면
늘 저를 기다려 주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집으로 오는 지름길을 피해 일부러 먼 동네로 돌아서 오곤는 했지요.
그때는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도 많았는지.
그러던 친구가 얼마전 이혼을 했습니다.
남편의 외도와 성격상의 문제로 여러날들을 고민하던 친구가
결국은 결정을 내리고 제게 전화를 했을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의 울먹임을 들으며
전 그냥 친구의 이름만을 조용히 불러주었습니다.
그날도 이렇게 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그래도 마음의 상처를 씻고 지금은 씩씩하게 살고 있는
친구의 모습에 안도합니다.
그 친구와는 아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또 하나의 친구.
80년대의 어두웠던 시대 상황을 거부하고
늘 시위대의 앞에 서 있던 그 친구는
한 줄의 시에도 눈물을 흘리는 마음 여린 친구였습니다.
우리는 막걸리 한사발에 김치 한 젓가락만으로도
배부르게 마실수 있었고 이야기할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 친구의 열정을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친구가 어느 따뜻한 봄날, 결국 시위 도중 연행되어
구치소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처음 면회를 갔던 날, 그 친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날도 비가 왔었지요.
친구는 유난히도 비가 많던 그해 여름을 보내고 가을의 문턱에서야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서울의 어딘가에서 소외된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는 그 친구가
베란다 밖으로 떨어지는 빗줄기 속에 살포시 떠오릅니다.
가을의 막바지에서
마당에 가득 쌓인 낙엽위로 떨어지는 빗줄기를 보면서
앞으로의 삶에 또 어떤 소중한 친구들이 남게 될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