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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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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실


BY 산난초 2004-09-17

유난히 무덥던 여름도 훌쩍 가버리고 풀벌레 요란한 가을이 깊어만갑니다.

작열하던 태양을 이겨내며 잘 견뎌준 고추며 콩 은 튼실히자라서, 고추는 한 50근 말려서 20근 정도는 좋은값에 시집보내고, 아직도 주렁주렁 반들거리며  품위를 잃지않고 기개를 세우고 있고, 고구마도 잘 되어서 머리통만하게 탐스레 커주고, 옥수수 심은밭에는 갈아엎고 김장배추며 무우를 심었는데 쑥쑥 유난히 잘커서 신퉁방퉁하여 하루에도 몇번씩 고놈들 들여다보는 재미에 날가는줄 몰랐는데 어느틈엔가  옷깃여미는 서늘한 기운에 공연한 겨울걱정에 불안한것 같습니다.

 

들에는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속 살 찌우느라 여념이없고 쭉쭉 벋어나간 호박넝쿨에는 두포기에서 멧돌같은 늙은호박들이 얼기설기 엮어놓은 제집을 무너뜨리고 앉아 꾸우벅 졸음에 겨워하며 분칠하고있답니다.

 

동네아줌씨들이 전문 농사꾼보다 더 농사를 잘 짓는다며 부러워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우리밭을 휘~이 돌아봅니다. 탐스럽다고...

 

고놈의 밭에 정신파느라 우리 손주들에게 손이 덜가서 요즘 마음이 짠하니 안쓰러워서 좀 미안하지요.

 

바쁜 일상에 조금은 힘겨워 하다가도 또 밭에만가면 세상 부러울게 없이 편안하고 즐거우니 이것도 병인것같습니다. 우리또래들이 많아서 요즘은 어울리느라 또 시간가는줄 모르고 만나서 수다도 떨고,그러다 보면 생활의 지혜를 알곡으로 챙기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리모두 알뜰하시고 배울게 많은지,  모여 얘기하다보면 나만 못난것같아 할 말이 없어, 잘 들어주고 맞장구만 쳐주고 가끔 우스개처럼 주책도 부립니다. 속없는 사람, 내 모습이 가끔 나에게 그리보여 혼자 어처구니 없어하다가도 에라 ! 생긴대로 살자 하며 허허거립니다.

 

세월이 지나 싱싱하던 곡식들이 결실을 맺으며, 제 본 모습은 퇘색하고 조용히 그리고 조금씩 순리에 순응하는 모습이 너무도 숭고합니다.

 

더 오래 버티겠다고 성형도 안하며 흙의 빛으로 사그라드는 가을의 모습은 겸손과 숙연함을 가르치며 미련없이 제 할일만 하고 조용히 주저앉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그리닮아 소리없이 한줌의 흙으로 거름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