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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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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커피와 모짜르트


BY 은여우 2003-10-30

 

내 머리속에서 항상 떠나지 않는 얼굴...

내 정신을 항상 지배하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을 생각하면 아침 햇살 퍼지는 창가의 커피가 생각나고

모짜차르트 음악이 생각난다.


내가 21살때.

그는 나와 같은 공간에서 근무 하고 있었지만

나하고는 아무런 관계없는 듯이 그렇게 하루에도

몇번씩 스치고 지나가곤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내가 회사에서 사보기자가 된후 부터는

그 사람은 더 이상 그냥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내 20대를 이야기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사람도 나와 함께 했던 시간을 나 같이 이렇게 생각할까? 

혹시나 내가 쓴 글을 보고 이야기 하려는 사람이 남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틀렸다.

여자다.

 

내가 지금 가장 만나고 싶고, 내 속 모든것을 다 속속들이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은 언니... 바로 그 사람이다.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 언니는 커피를 너무나 좋아해서 별로 커피를 즐거하지 않는 나도 즐겨하게 되었다.

 

커피를 마시면서도 커피 향만 맡아도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커피가 무슨 커피인지, 또 커피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

덕분에 그동안 지겨웠었던 아침출근시간이 즐거워졌다.

 

근무시작하기 전 언니와 함께 했던 모닝커피 타임은 세상의 어떤 시간보다 더 소중하고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서로 책 읽은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인생이야기...

그때 이야기했던 모든 것들,,, 단순히 잡담 수준이 아닌, 인생을 이야기 하고 또 서로를 이해해 주고... 그런 아주 소중한 시간이 었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그날은 햇살이 아주 따사롭게 퍼지던 봄날 오후였는데, 업무차 언니 사무실로 들어갔었다. 그 언니의 일은 사보를 만드는 거라, 그날도 언니는 어김없이 교정을 보고 있었는데, 까만 단발머리를 귀뒤로 꽂고 몰두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못해 신성스러워 보였다... 감히 옆에 다가갈 생각을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언제 나를 언니가 보았는지 나를 보고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응.. 왔니..여기와서 앉아”


남들이 보면, 별 것 아닌 일상의 한 장면이었지만,, 난 그 장면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언니를 생각할때면,, 언제나 그 때의 모습이 떠올라, 지금도 나 혼자 웃곤한다..


언제나 어눌한 말투,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 동그랗고 너무나 맑은 눈동자-정말,, 그렇게 아주 미인은 아니었지만, 언니 눈을 보고 있으면, 갓태어난 아이의 눈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맑은 눈빛뒤에 숨겨져 있는 슬픔...

철 없는 난 처음 언니의 모습에서 그걸 읽어내지 못했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래 층층동생의 미래와 한집의 경제를 책임져야 했던 너무나 힘든 여건... 20대 한참 놀러다니고, 즐겨야 할 나이에 그녀가 감당해내야 할 큰 짐이었음에도 항상 환한 웃음을 나에게 보여줬던.. 언니..


그러나 그 뒤에 깃들여진, 왠지 알지 못하던 슬픔을 난 시간이 흐를수록 알 수 있었고,

 

그래서 살짝 건들이기만 하여도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맑은 눈망울이 그래서 더 맑고 더 크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책을 좋아하고 글을 아주 잘 쓰던 그 언니는 나의 글쓰기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언니가 읽고 감명깊었던 책을 나에게 얼마나 감칠맛 나고 흥미롭게 이야기 해 주던지.. 실제로 그 책을 읽어보면, 언니가 이야기 한만큼의 감동은 아니지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언제나 무엇 하나의 이유 때문에 글을 잘쓰고 싶어 하던 나의 어리석은 자존심을 깨우쳐 주었고, 글을 쓴다는 것은 뼈를 깎는 아픔을 겪어야만, 살아있는 글들을 만날 수 있다고 나에게 이야기 해주었다.


진정한 글쓰기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쓰는 것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위해 쓰는 거라고...


요즘에 글 쓰다가 풀리지 않거나, 쓰고 싶지 않을 때, 아님 이 길을 아주 포기하고 싶을때, 난 그때 이야기를 하던 언니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힘을 내곤 한다..


내가 너무 힘들다고, 투정아닌 투정을 부리거나, 지쳐서 글쓰기를 게을리 할 때 언니가 항상 하던 말이 있다..


작가가 되려는 사람은 전생에 지은죄가 많아서 지금 생에 그 업보를 갚을려고 그런 고통을 감내해 내면서 글을 써야만 한다고...


너도 전생의 지은죄를 갚아 나가려면 앞으로 많은 글을 써야 하고, 또 그 글로 세상 사람들에게 기쁨과 사랑과 슬픔을 알게 해야 한다고...


그러나...

이제 난 그 언니를 내가 찾아 낼 길이 없다...

아무리 찾아도 찾아지질 않는다...


언니가 결혼하고 처음에는 연락이 닿았었는데, 너무나 힘든 생활에 지치다 보니, 점차 전화통화하는 기회도 줄어들고, 그 사이 언니는 이야기도 안한체 회사를 퇴사하고... 얼마전에 어렵게 연락이 됐었는데,,,

또 몇 개월 후에 내가 알고 있던 전화번호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아마도 지금은 힘들고 어려운 일을 이겨내느라 그런거라 스스로 위안을 해 보며, 다시 언니와 모닝커피를 마실날이 있으리라... 꿈을 꿔 본다.


지금은 보고 싶을때 볼 수 없지만, 내 머리속을 항상 채우고 있는 사람...

오늘따라 그 커다란 눈망울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