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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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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에서


BY 캐슬 2004-06-14

 한참을 서성여야 했습니다.

좁은 골목을 조심조심 걸었습니다.

낮은 담벼락의 흐린 낙서 한 줄도 내 친구의 글씨인 듯 하여 들여다 보기를 한참 했습니다.

기웃기웃 골목을 왔다갔다하는 내가 이상한지 골목에 앉아 얘기를 나누시던 할머니 두 분은 저를 주의 깊게 지켜 보십니다.

'할머니 저 나쁜 사람 아니에요'

간절한 눈빛으로 신호를 보내 보았지만 여전히 할머니는 저를 경계 하십니다.

그러다가 찾았습니다.

'시 보호 수목 팽나무'

보잘것 없는 초라한 간판 뒤에 시멘트 벽에 기대어 작아져 버린 나무 한 그루를 보니 콧등이 시려 옵니다.  아주 푸르고 무성한 잎을 뽐내며 그늘을 만들어 동네 또래의 개구장이들이 마음껏 놀수 있도록 해 주던 아낌없이 주는 팽나무 였습니다.

술래잡기를 할땐 술래가 눈감고 하나, 둘...세며  얼굴을 묻었던 팽나무 였습니다.

말타기를 할때는 튼실한 기둥으로 버터주던 고맙고 변함 없던 우리 모두의 친구 였습니다.

30년도 훨씬 더 지나버렸습니다.

자라버린 내 키에, 세월에, 작아져 버린 팽나무  아래 어른이 된 제가 서 있습니다.

재잘거리던 꼬맹이 친구들 모습이 눈에 선한데 친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친구가 보고 싶어져서 한참을 팽나무를 맴돌다 가만히 쓸어도 보았습니다.

빈 하늘을 올려다 보며 그때의 흙냄새를 떠 올려도 보았습니다.

얼굴에 꾀죄죄 흐르던 땟국물 흐르던 오랜 친구들이 몹시도 그립습니다.

친구들중 누군가가 저처럼 지금 이 추억속의 골목을 찾아오는 이가 없을까? 하고 골목을 휘~ 돌아 보니다. 아쉽게도 아무도 없습니다.

빈 골목에는 정적만이 감돕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추억을 접고 ,변해버린 골목길을 되집으며 돌아 나옵니다.

모텔의 출입구가 골목 뒤 쪽으로 비밀스럽게 나 있습니다.

하필이면 그런 곳을 두리번 거리며 천천히 걷는 나를 지나가는 남자가 흘끔 거리며 야릇하게 자꾸 쳐다 봅니다.

'어디로 들어가는지?'

하는 의심으로 쉽게 나를 두고 지나가지 못해 걸음을 미그적대며 자꾸 저를 지켜 봅니다.

'나 아니야~'

그런 표정을 지어보며 씁쓸해 집니다.

이제 여관이나 모텔이 없는 곳은 어디에도 없나 봅니다.

잘못 이 골목에서 나서다가는 오해받기 딱 인것 같습니다.

서둘러 골목을 빠져 나오다가

다시 한번 안녕을 고하려 돌아선 골목엔 반짝반짝 이상한 집들의 유혹의 불빛만이 빛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