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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연재] 엘리베이터의 세여자-2


BY 아미라 2007-09-16

단편소설 '엘리베이터의 세 여자'

원작 :     아미라 리

 

연락처: 이멜 egyko@yahoo.com

 

 

                                                2

 

 퇴근 무렵이라 그런지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줄을 선 사람이 없 다. 나는 여유있게 새로 맞춘 부츠 속의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한칸씩 떨어지는 머리 위의 불빛을 바라본다. 도대체 몇 층짜리야 이 빌딩. 아무리 지진없는 나라라지만 이렇게 막 올려도 되는 거야. 떨어지는 불빛은 어쩌다 한번씩 멈추면 시간을 엄청 끈 다음에야 다시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호들갑스럽게 그여자가 들어선 건 아니었다. 겉모습이 지나치리만큼 화려 해서 눈에 뜨인 것이지 소란스러워서는 절대로 아니다. 엘리베이터에 타는 내 꼬리를 붙잡고 덩달아 밀려들어온 그여자의 온몸에서 엄청난 샤넬 넘버 5가 뿜어져나 왔다. 젠장 집에 가자마자 당장 향수부터 바꿔야지. 내가 뿌 릴 땐 은은하던 샤넬 넘버 5가 이제는 화학개스만큼이나 버겁다.

 

밋밋한 프렌치 코트에 전혀 다듬지 않아 갈기처럼 흩날리는 내 짧은 커트머리를 영점 일초만에 훑어본 여자는 곧 나를 잊는다. 누군가의 관심이나 흥미에서 지워지는 건 그사람의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자신의 매무새를 수십 년 간 심혈을 기울여 잘 가꾼 여자의 시선으로 볼때 나는 여자이기를 포기하거나 여자로서의 의무를 망각한 사람쯤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니 귀하게 다뤄야지. 아무나 미인이 되는 줄 알아. 뭐하는 애야 얜. 그렇게 말하는 눈빛. 그러나 여자는 모를 것이다. 내딴에는 이것도 꽤 공들인 자기사랑이라는 것을. 오늘 이시간을 위해 아침부터 있었던 나의 부산함을. 여자의 눈에 비친 내 프렌치 코트는 허접한 쓰레기쯤으로 보였을 지도 모른다. 주제에 향수는 뿌렸네.라고 생각하든지 아니면 자기 향수에 가리워져 내가 향수를 쓰고 있는 지조차도 깨닫지 못하든지.

 

나도 평소에는 낯선 누구를 유심히 바라보는 예의없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무시당한 시선을 받은 처지에 나도 한번 봐주자 당신은 어떤데 하는 맘이 들어 여자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진짜일지도 모르는 표범가죽프린트 미니 스커트에 무릎 위까지  훌쩍 올라온 부츠, 북실북실한 모피자켓이 아프리카를 막 벗어나온 사람같다. 도심에서 이런 모습을 보니 굉장히 생경스럽군. 나의 시선이 자신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것을 의식한듯 그여자는 악어핸드백 안 에서 핸드폰을 척 모양나게 꺼내든다. 여자의 몸놀림 하나하나가 멋을 담기는 했다. 요즘에도 악어핸드백 들고 다니는 사람이 다 있네. 신기해하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뭔가를 열심히 핸드폰 으로 지시하는 듯한 여자. 통유리 엘리베이터 덕에 서울의 야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눈은 즐거웠지만 본의아니게 그여자의 갈라진 음성이 물어다주는 이야기들을 듣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이 순간의 티였다.

 

    글쎄 오늘은 이게 더 중요해요. 내가 준 롤렉스 돌려받아야 해요. 당연하죠. 그게 얼마짜린데. 바쁘다는 핑계야 늘 대는 거고. 오늘은 꼭 받아야해. 듣더니.버럭. 뭘 믿으라는 거야. 그자식한테 뭐 받은 거 있어요 김감독. 아니면 선배라고 편드는 거야 뭐야. 듣더니. 토요일엔 내가 바쁘다고 했잖아요. 화보촬영간다고 몇번 말했어요 대체. 얼른 다른 날로 잡고 런닝개런티 아니면 그거 출연 못한 다고 제작자한테 전해주세요. 발음 또박. 눈빛 또렷. 음성 카랑. 짙은 루즈 에 묻어나는 자존심. 거기다 화려한 차림새. 무의식적으로 나의 시선이 유 리창에 비친 그여자를 쫓는다. 내용처럼 화보 촬영에 다른 출연 섭외를 거 절해도 될만큼 알려진 배우도 아니었다. 여자는 대단히 고압적인 자세로 전화 상대방을 시종 야단치고 명령하고 있었다. 문득 '채 피어 나지 못하고 시들어버린 퇴기'라는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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