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전화벨이 울린다.
순간 가슴이 덜컥.......
이른 시각, 늦은 밤 전화벨 소리엔 반가움보다는 긴장이 먼저인 걸.
받으니 통화 하겠냐는 안내 멘트다.
당연히 해야지. 흔치 않은 일에 당황하며 받고 보니 조카딸이다.
“작은 엄마 나 병원에 입원했어요.......
수정(내 딸 이름)이 좀 바꿔 주세요.”
몇 년째 우울증으로 시달리는 조카가 입원을 했단다.
당분간 면회도 안 되고, 전화도 안 되고.......누구 만나고 싶지도 않고........
다만 초등생 아이가 걱정이 되서 수정이를(아동 상담 전공) 찾는 모양이다.
그나마 아이 챙길 여력이 있는 걸 보니 다행이구나.
애써 가슴을 쓸어내리지만 이미 내 몸은 떨리고 있다.
이를 어쩌나....... 괜찮을 거야........
며칠 전 그러니까 조카가 입원하기전에
둘이 만나 이야기를 나눈 날이 있었는데 그날보니 이 녀석이 표정이 없다.
슬픈 이야기를 줄줄이 토해 내면서도 눈물이 없고,
즐거운 이야기를 하면서도 웃음이 없고.......
나 혼자 울다 웃다 그렇게 얘기하고 헤어졌다.
서른아홉의 내 조카
모습은 마치 오월 수국 같고, 유월 모란 같다.
신이라도 시샘할 만큼 예쁜 나이고 모습이다.
이 아이가 겪는 시련앞에서 나는 그저 안타깝고 애처롭다고만 한다.
수정아, 네가 지푸라기라도 되어 줄 수 있으면 좋겠구나.
그럴뿐이다.
얼마 전엔 친구의 아픈 이야기를 들었다.
헌데 아프다고 털어 놓는 친구에게 대뜸
“나도 아퍼........” 그랬다.
참 어이없다.
그래서 어쩌라구?
그러니 참으라구?........ 네 아픔 그거 별거 아니라구?........
아니지. 그건 아니지. 그거 절대 아니지.
아닌데 왜 겨우 그런 말밖에 못했을까......
나는 어째 이리 못났는지 모르겠다.
간단치 않은 세상살이 실컷 경험하고도 처방전 하나 쥔 것이 없다.
사랑하는 이들이 아프다는데 건네 줄 묘약도 명약도 없다.
어쩌나........어쩌나........매번 둔한 발만 구를 뿐이다.
이것이 나의 어리석음이며 아픔이다.
장마란다.
어느 해인가 나는 광란하는 바다를 본 적이 있다.
굵은 빗줄기 사정없이 바다를 내리치고
서슬 퍼렇던 물색은 허옇게 거품 물고 길이길이 대들고,
몰아내는 바람 앞에 죽기 살기 바락바락 악을 쓰고,
노기 어린 하늘 향해 온 몸 헤쳐 삿대질 하고,
..............
저러다 세상을 엎어 버리지 했다.
그러나 광란이 거두어진 뒤 그 바다는
전에 비할 데 없이 정말 파랬고 고요했다.
표정 없는 조카가 생각할수록 안쓰럽다.
속으로 울고 밖으로 웃는 친구가 애달프다.
왜 그래야 하느냐?
때려 주고 싶을만큼 너무 착한 그네들이 나는 밉다.
실컷 소리치고 실컷 토해내고.......
이제라도 그러하면 이 긴 비가 씻어주지 않겠느냐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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