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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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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하늘 나무 비 바람 안개 그리고...


BY 土心 2004-11-11

"단풍 마저 질라... 보고 싶네...."
"그래? 그러면 단풍 보러 가지... 갑시다."
"아니?!..."
남편이 앞장 서고 내가 따라 나선다.
집 밖에 나와 하늘을 올려다 보니 금방이라도 눈물 한 방울 뚝 떨굴 것 같은 표정이 영 심상치 않다.
차에 올라 동네를 빠져 나오는데 떨어지는 낙엽 따라 뺑뺑 돌며 거리를 쓸고 계신 어느 할머니의 굽은 등이 꽤나 정겹다. 잠시 바라 보자니 바람은 나뭇가지 따라 돌고, 나뭇잎은 바람 타고 내려와 따라 돌고, 할머니는 비를 들고 그 떨어진 나뭇잎 따라 돌고...덩달아 함께 도는 내 눈동자에 웃음 하나 번진다.

나 어디로 데려 가냐고 물을 이유 없어 잠자코 차창 밖에 시선 내 놓고 이럴 땐 무슨 생각을 하면 좋을까 그러고 있는데 기어코 인상 쓰던 하늘이 심통 난 제 맘 감추지 못하고 속 없이 눈물을 보이기 시작 한다.
너무 좋아 안달 나던 날씨 누가 뒤로 숨기고 이건 또 무슨 조화인가 속으론 살짝 궂은 날씨에 심통 나지만 모처럼 털고 일어 나 큰 맘 낸 남편에게 여우 웃음으로 속 감추고 한마디 건넨다.
"여보, 오늘 당신 땜에 하늘도 감동 했나 봐. 날씨 주~~긴다!"
"피식---"
그래, 그래도 여보 고맙다.
바람 빠진 풍선에 바람 불어 부풀리 듯 오그라진 내 남편 심장에 펌프질 한다는 목적이 오늘 외출에 있음을 남편은 아마 눈치채지 못 할거다.
 
그래도 가는 길 방해하지 않으려고 하늘도 억지로 참아 주는지 빗물은 떨구다 말고 흘리다 말면서 마지막 단풍이 색을 열어 오색을 시야로 담게 하니 나를 감동케 한다.
보니 남편은 행선지를 양평으로 잡은 듯 차 가는 방향이 한강 줄기를 따르고...
어디로 도착해야 한다는 목적지가 설정 되지 않은 나들이의 자유로움이 이런 것인가...길이 있으니 그 길을 가고, 눈에 담기니 그 길을 가고, 발 길 닿으니 그 길을 가고, 마음 가는 그 길을 가고....휴일이면 몸살을 앓을지도 모를 이 절경의 길이 오늘은 어찌나 호젓한지 이런 날 둘이 함께 드라이브하면서 백 말이 무슨 소용있으랴...가다 가다 한 번씩 남편 손등 위에 내 손 얹어 수혈 하 듯 체온 옮기며 남편 가슴에 내 가슴을 잇는다.

한참을 가다 보니 '개울목' 집 이름도 그럴싸한데 집 모양도 그럴싸하니 때 맞춰 고픈 배 식욕이 동하고 둘은 이심전심 가던 길 멈춰 밥 한끼 먹자고 들어 선다
마당에 피워 놓은 장작불에서 나는 연기가 들어 서는 사람 맘 순간에 잡아 주인장의 어서 오시라는 인사말은 소용 없고 "우리 밥 좀 주세요"... "그러세요" 두 마디로 통하니 나그네와 주인이 마치 어제도 만난 고향지기 다름 없다.
안으로 들어 서니 벽 난로에서도 마른 장작 타닥타닥 불꽃 살라 추운 길손 따사롭게 반기고,  많이 참은 하늘에선 기다린 듯 굵은 빗줄기 한 차례 쏟기 시작 하는데 창 너머 바라 보이는 강 하늘 나무 비 구름 안개는 서로가 한 몸이듯 하나가 각 몸이듯 서로 안겨 비경이라면 표현이 될까 망막에 담겨지는 동영상이 꿈에서나 볼 일이듯 순간 숨이 탁 멈춰 진다. 
그렇게 넋 놓아 몰입 지경으로 한 시간 가까이...남편은 푹신한 의자에 파묻혀 명상인지 졸음인지 가는 숨 간간이 내 쉬며 세상 편한 얼굴로 비몽사몽 삼매다.
이처럼 배고픈 사람 한 시간을 기다려 먹게 한 식사에는 이 집 주인의 의도와 사정이 있겠지마는 적어도 나는 그것이 쉬고 싶은 나그네의 맘을 읽은 주인의 배려라고 생각 하며 감사의 맘과 아쉬움의 맘을 장작 더미에 살짝 올려 놓고 맘과 배를 불려 -개울목- 그 집을 나선다.

돌아 오는 길은 내내 비가 내린다.
바싹 마른 나뭇잎 빗물 먹고 내리면서 빨간 잎은 빨간 물을 노란 잎은 노란 물을 푸른 잎은 푸른 물을 흘려 내는데... 저 고운 물 연적에 담고 붓에 발라 빛바랜 남편 가슴 화폭 삼고 단청하듯 사경이라도 할 수 있음  참으로 좋겠다...
허나 안타까워 할 일 아니다. 이미 남편도 이 늦가을 단비 약수 되어 마른 가슴 축이고 가슴앓이 아픈 상처 다는 아니어도 조금은 풀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고 보니 오늘 비는 정녕 방해꾼은 아니었나 보다. 오히려 축복의 전령사였음에 감사할 일인가 보다.

눈 감으면 사라질 것 같은 오늘의 아름다운 여운 때문에 잠시 밤은 물려 놓고 여기 이렇게 벗과 만나니 이 또한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