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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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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BY 土心 2004-05-12

       여행
              
      일요일, 
      아직은 어둠을 거둬 내기 이른 시각에 
      나는 배낭 하나 울러 메고 집을 나선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제법 굵은 빗줄기의 힘찬 雨聲과 
      싸하게 가슴 파고 드는 새벽 찬 공기와
      어스름한 반백의 어둠이 
      벌써 오늘 여행의 진수를 예견해 준다.
      
       
      행선지는 영주 부석사와 
      소백산의 희방寺로 역시 첫 걸음이다.
      부석사는 
      의상대사를 사모 하던 선묘 낭자의 아름다운 전설과 
      浮石(떠 있는 바위)의 형상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며, 
      소백산 깊은 계곡 따라 폭포를 거슬러 하늘 가까이 가면 
      그 곳엔 희방寺가 있다.
      
       
      잠시 언급하자면 
      가랑비 오는 소백산 길은 이러했다.
      산 허리는 雲霧 내려 휘어 감고
      계곡 굽이 따라 물 안개는 피어 나고
      천 길 낭떠러지 쏟아지는 폭포의 彪號로
      巨木은 토악질하여 갖은 초록 뿜어 대고  
      그 틈새에 야생초들은 가녀린 고개 외로 꼬고 앉아
      새초롬 원색의 앙증을 떠니
      산행하는 사람  눈 길 잡아 발걸음 멈추게 하고
      계곡을 가로 지르고 폭포를 거스르고 
      낭떠러지에 지축박아 디딤돌로 박은 나무는
      썩음 썩음 하여 흡사 나 닮은 세월을 느끼게 하고 
      굳이 우회하라는 길을 마다하고 
      패이고 허물어지는 위험한 그 길을 겁없이 내려 옴은
      소백산 산신령이 바로 나인 듯 객기 때문이었으리.
      
       
      참으로 안개비에 젖고, 물 비에 젖고,
      구름비에 젖고,나무 비에 젖어 
      몸은 황홀하여 천상 어디쯤에 있는가 착각하고
      맘은 감격하여 눈물이 폭포를 이루고도 남아
      몸과 맘에 붙은 수십 년 묵은 찌끼 순간에 훑어 내리니
      더 이상의 찬탄이 무엇 또 있을까 그러하다.
      
       
      이렇게 가다 한 번씩 사람들 속에서 빠져 나와 
      대 자연의 품속을 찾아 들고, 
      일상의 번거로움에서 잠시 눈을 돌려 
      신비로운 자연의 속곳을 들춰 보는 일
      그 일이 내겐 참으로 설레임이다.
      
       
      매쾌하고 까슬하고 텁텁하고 탁하고 
      스산하고 무미하고 건조하고 딱딱한
      이 도시의 삶 공간에서 잠시 일탈하여 
      큰 숨 한 번 쉬고자 찾아 가는 곳 
      하루, 일 주일, 한 달, 일 년을... 내내
      자로 잰 듯 눈금 맞춰 살다가 
      내가 나에게 휴식을 주고 싶어 찾아 가는 곳 
      그 곳이 자연이고 
      그래서 나는 그 자연을 聖地라 名한다.
      
       
      이렇듯 초여름 가벼운 비는 여행의 맛과 멋을 더하고
      뱃심 맞는 곰삭은 벗은 여행의 흥을 돋우니 
      종일 집 떠난 발걸음이 고단 한 줄도 모르겠더라.
      
       
      돌아 오면 이렇게 감동을 곱씹어 회향하고
      더불어 일상의 원동력으로 삼아
      다시 사람 사는 곳 이웃이 되어 제자리 앉는다.
      혹여 소백산 초여름 풀 내가 아직 이 몸에 배어 있다면 
      그 향내 가시기 전에 여기 모다 뿌리고픈 
      마음 하나 전 할 뿐이다. 
                  
      흐르는곡/그저 바라볼수만 있어도 / 유익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