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반려 동물세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459

내 친구들이여 사랑 합니다


BY 土心 2004-04-20

 

'무엇이나 말하여 보려고 한다면 이미 본심을 잃은 것이다' 예, 바로 그것이 두렵습니다.
'곡식이 만들어 지는 것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이 나오는 것을 보고 사람을 안다' 했으니 그래서 또 두렵습니다. 
'찰나에 이미 생각은 900번을 생멸한다' 하였으니 말을 하는 그 순간의 진실은 어디까지인지 몰라 그래서 또한 두렵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수없이 많은 말을 날이면 날마다 이렇게 쏟아 냅니다.
나는 그 두려움을 자꾸 잊는 모양입니다.

오늘은 친구 얘기를 하렵니다.
내겐 30년을 훌쩍 넘긴 소중한 친구들이 있습니다.
귀밑 단발머리 중학교 시절부터의 친구들이니 그야말로 사춘기를 함께 공유한 곰삭은 친구 사이 입니다.
우린 싸우면서 정들고 경쟁하면서 정들었는데 그 다투고 경쟁하는 미묘한 감정은 지금도 계속입니다.
만나면 누가 누구에게든 속 없는 말 한마디에 작은 생채기 하나라도 남게 되지만 그래도 베어 버릴 수없는 서로의 살과 같은 친구들입니다.
앞으로 죽는 날 까지 함께 한다면 부모보다도 남편보다도 자식보다도 더 많은 세월을 함께 보고 가야할 그런 각별한 친구들 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키우는 일은 물론이요 집안의 대소사며, 좋고 궂은 일 하며, 울고 웃어야 했던 그 모든 삶의 사연들을 서로 서로 속속들이 꿰면서 그렇게 살아 가는 핏줄 같은 친구들입니다.
아프면 함께 아프고, 좋으면 함께 좋고, 슬프면 함께 슬퍼할 준비가 언제든 되어 있는 둘도 없는 친구들입니다.
나는 종종 말 합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 한 일 몇 가지를 꼽으라 한다면 그 중 으뜸이 내 친구들과의 만남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이미 우리의 우정은 인륜 보다는 천륜입니다.
그러면서도 티격태격하는 이유는 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경계의 산증이라 생각 됩니다.
지나친 관심이 간섭이 되고, 거르지 못한 표현이 흉기가 되고, 무심이 배려와 전도 되고, 개성이 인정 되지 못할 고집이 되고, 정이 집착이 되고, 주장이 아만이 되고, 논쟁이 고성이 되고, 차별이 서운함이 되고, 자존심이 격정이 되고, 걱정하고 위한다는 것이 나무람이 되고, 사사건건 지적하고 꼬집으니 투정이 되고, 비밀이 대죄가 됩니다.
어쩌면 지나치게 가까운 사이 일 수록 이 다를 수 있고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갈등의 요인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우린 정말 많이 다릅니다.
우리가 우리끼리 명명 하기를 다섯 색깔이라 할 만큼 각자 너무도 분명한 색깔을 가지고 있습니다.
머리가 뜨거운 친구가 있는가 하면 가슴이 뜨거운 친구가 있고, 적극적인 친구가 있는가 하면 소극적인 친구가 있고, 이론가가 있는 가 하면 행동파가 있고, 해서 안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 하는 친구가 있다면 해서는 안 될 일이 너무 많은 친구도 있습니다. 스스로 잘났다며 잘난 맛에 사는 친구가 있다면 굳이 못났다고 못 난 타령으로 사는 친구도 있습니다. 불같은 친구가 있는가 하면 물같은 친구도 있습니다. 드러내기를 좋아 하는 친구가 있다면 덮어 두기를 좋아 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꼬장꼬장한 친구가 있다면 두리뭉실 넘어 가는 친구도 있습니다. 앞장 서기를 좋아 하는 친구가 있다면 따르기를 좋아 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두루 두루 알고 싶은 것이 많은 친구가 있는가 하면 한가지만 고집하며 몰두 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실속을 중히 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명분을 중시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렇듯 확실한 개성 만큼이나 식성도 다르고, 기호도 다르고, 취미도 다르고, 표현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고, 직업도 다릅니다. 다른 것을 낱낱이 열거 하자면 그야말로 몇 날 몇 밤도 모자를 지경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늘 입에 배어 하는 말 '이제 그만 만나자' 입니다. 그도 역시 찐한 반어법 입니다.
이렇게 하면서도 우리는 40년 가까워 오는 세월을 줄기차게 함께 했습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분명 있을 텐데 무얼까? 묻기도 합니다.
허나 우리는 이미 이유나 명분이 필요치 않은 아니 의미가 없는 그냥 그대로 내 피와 살점일 뿐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이 인정 됩니다. 그리고 모든 감정이 공유 됩니다. 모든 생각이 공감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다가도 그 공유나 공감이 안될 때 그 때 겪는 고통이 바로 내 살을 도려 내는 아픔이라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우리 중 친구 하나가 등을 돌렸습니다.
내 세치 혀의 독설이 이유입니다.
안 된 친구에게 안타깝다고 내 뱉은 말이 그만 그 친구에게는 독이 되었습니다.
너무 가까워서 입힌 상처입니다. 
또다시 그런 오류를 범할까 늘 그것이 내겐 좌불 안석입니다.
유독 입이 방정이라 친구들 사이에선 오지랖이란 오명을 쓰고, 성질 못된 인간으로 통합니다.
사실 다른 곳에선 나만한 천사표도 없다고 하는데 말임니다...???
그러니 이런 지나친 도덕군자 친구들 앞에서 난 늘 반성해야 하는 우울한 처지입니다.
요즘도 미동치는 갈등이 있어 조금은 맘이 번거롭고 힘이 듭니다.
사실 내 친구들 만큼은 아껴 두었다가 가장 화려한 말발로 극찬하며 소개해야지 했는데 결국 요즘 드는 꿀꿀한 기분을 감추지 못하고 이렇게 성급하게 풀어 냈습니다.
허나 이것도 내 나름의 애정입니다.

거듭 생각해 보건데 정말 오랜 세월을 함께 했습니다.
지루 한 줄도 모르고, 가는 줄도 모르고, 어느새 이렇게 장구한 세월을 아름답게 동행했습니다.
너무 바빠 한동안 얼굴 못 보던 친구도 다시 합류 했습니다.
지금은 토라져 등 돌리고 앉아 있는 친구도 언젠가는 다시 제자리 돌아 올 것입니다.
그냥 그렇게 우정이라는 한마디 말로 대변 되는 단순한 우리 사이가 아닌 만큼 죽음도 神도 우리 사이를 가르지는 못할 것입니다.
가다 누가 넘어 지면 아플까 봐 잡아 일으키지도 못하고 차라리 옆에 같이 누워 버리는 여리디 여린 친구들입니다.
옆에서 하나가 울면 눈물을 닦아 주기는커녕 덩달아 함께 대성 통곡하는 고지식 하고도 순한 친구들입니다.
네 기쁨에 내 아픔도 녹여 낼 수 있고, 네 웃음에 내 슬픔도 감춰 버릴 수 있는 둘이 아닌 친구들 입니다.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라고 쓰신 어느 수필가의 글을 인용하여 우리가 나눈 그 세월이 바로 그런 바다 우정이라고 말 하렵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남은 날 살아가는 동안에도 너와 나 우리가 겪을 일들이 가지가지 굴곡이라 한들 한가지 변함없을 것은 우리들의 사랑일 거라고 난 말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혹여 주워 담지 못할 허접한 말로 친구들 심기를 종종 어지럽힌다 해도 그것이 내 친구를 향한 사랑법인 걸 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고 믿습니다.
내 친구들이여 내가 진정 자네들을 사랑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