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을 열어 바깥 빛을 안으로 들이며 이제 또 하루를 시작 한다.
오늘은 내가 좀 부지런 했나, 세상은 아직 눈을 덜 뜨고 어스름한 채 나를 맞는다. 밖을 내다 보니 온 대지가 촉촉이 젖어 있다. '밤새 봄비가 그랬구나. 밤새워 이리 했어.' 반가운 맘에 얼른 현관문을 열고 나가니 아니나 다를까 코끝에 닿는 목련의 속살이 봉곳하게 부풀대로 부풀어 올라 있다. 몇 날을 두고 조급증 내며 기다리는 내 맘을 아는지 갖다 댄 귓전에 목련은 꽃향으로 속삭인다. 이제 쬐금만 정말 쬐금만 기다리면 된다고... 그러고 보니 사방 시야에 들어 오는 초목마다에 화색이 도는데 그 빛이 어제와 같지 않고 그 향이 예사롭지 않음이 어제와 사뭇 다르다. 허나 보아 오건데 봄꽃은 정말 너나 없이 야박해서 자칫 게으른 이에게는 눈인사도 나눌 여유를 주지 않는다. 애간장 다 녹이다가도 어느 날 문득 포문을 열기 시작 하면 촌각을 다퉈 만개 하고, 만개 했는가 하면 어느새 낙화하고 이렇듯 피고 지는 시차가 동시인 듯 성급하기 이를 데 없다. 하기사 봄이란 게 원래 그러하지. 하여 올핸 작심하고 두 눈 부릅떠 저 녀석들 얼굴 내밀기 내 먼저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헌데 이 기다림이 행복인 것은 참으로 신기하다. 또한 이 행복해진 맘으로 세상을 보니 온 천지가 내 것 인 것도 신기하다. 지금 내가 마신 봄 내음은 내 것이요, 내가 바라 본 하늘은 분명 내 것이요, 내가 마중한 이 아침도 틀림없이 내 것이니... 아, 나는 부자로구나. 짧은 순간 한 생각에 이리 넉넉한 행복을 불러 일으킨 것이 또 즐거워서 이 행복의 파장을 누구에게든 전하고 싶어진다. 하기에 절로 흥에 겨운 콧노래로 식구들 아침 단잠부터 깨워 일으킨다. 눈꼽 끼고 침 흘린 볼에 아낌없이 퍼붓는 뽀뽀 세례로 아이들은 이미 어미의 행복을 분양 받아 가고, 엷은 커피향에 미소까지 얹은 유혹으로 남편은 이 아내의 행복을 유감없이 이양받아 간다. 향 하나 사르며 쏟아 내는 감사의 기도는 그침 없는 행복 파문이 되어 온 집안을 휘감아 돌며, 친구들과 주고 받는 우정의 메일은 이미 행복 파장이 공간을 넘어가는 순간이 된다. 여기 쏟아 놓는 맘자 하나하나 역시 틀림없는 행복 파문이며 이 작은 파장 하나가 일만 만파로의 도화선이 될 수 있음을 나는 믿는다.
그렇다, 지금 이 아침처럼 한 생각에 행복하고, 한 생각에 넉넉해지고, 한 생각에 감사하고, 한 생각에 풍요로워 질 수 있는 도리와 이치를 한 그루 꽃나무는 거침없이 설명해 낸다. 봄비 한줄기 생명수 되어 온 천지가 기지개 켜는 이 아침, 나 여기 동화되고 귀속되어 오늘 하루만이라도 그대로 자연인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