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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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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들에게 고백 합니다


BY 土心 2003-11-14

 

10년을 보았는데 10년이 한결 같은 지기가 있습니다.
10년 전,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짐 없이 야무지게 빗어 올려 하나로 정갈하게 묶은 모습이 지금도 그러하고,
잡티 하나 없는 뽀얀 얼굴에 화장 한 번 진하게 한 적 없고 살짝 분 바르고 연 분홍 립스틱으로 새댁 같은 모습이 지금도 그러하고,
늘 조근 조근 속삭이듯 말하고 발걸음은 사뿐하고 얼굴엔 엷은 미소 떠나 본 적 없는 모습이 지금도 그러하고,
맘에도 몸에도 군 살 한점 붙지 않아 거드름 없는 자태가 지금도 그러하고,
바지런하고 솜씨 좋기가 견 줄이 없음이 지금도 그러하고,
남에게는 이기지 못해도 자기 자신에게는 용서가 없는 반듯한 성품이 지금도 그러하고
기도가 생활이고 생활이 기도인 경계없는 한결 같음이 10년을 두고 그러합니다.
난 향 같기도 하고 매화 향 같기도 한 그런 고운 사람을 내가 지기로 삼고 있다는 것이 과분해서 여기 자랑 합니다.

사람이 한결 같고 변함 없다는 것이 쉽고 당연 한 일 같지만 살다 보니 그것이 그리 쉽게 당연 하단 말 할 수 없음을 알겠습니다.
물론 한결 같다는 말이 고지식 하다는 말과 동의는 아니고, 또한 변함 없다는 말이 흐르지 못하고 고여 있다는 뜻도 아닙니다.
사노라니 참으로 많은 사람들과 짧게 또는 길게, 우연히 혹은 숙명처럼 만나고 헤어 지면서 갖가지 인연들을 지어 가게 됩니다.
내게는 서두에 말한 벗과 같이 그렇게 한결 같고 따뜻하고 지혜로운 벗들이 있어 10년, 20년, 30년 우정 쌓아 가며 변함 없이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사는 데 큰 힘이 됩니다.
어쩌면 주변의 이런 인연들이 곧 내 인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좋은 인연만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니란 걸 경험을 통해 압니다.
惡한 이나 善한 이나 내가 보고 배우는데 있어서는 스승 아닌 이 없겠으나, 불서에도 보면 善友는 가까이 하고 惡人은 멀리 하라는 경책의 말씀도 나옵니다.
향 싼 종이에선 향내가 나고 생선 싼 종이에선 비린내가 나니 감추려 해도 사람의 본래 성품이 가려질 수는 없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허나 뒤집어 생각 하면 '나는?' 하고 묻게 됩니다.
나는 살면서 지인들에게 악인일지 선우일지 가슴에 손 얹어 헤아리게 됩니다.
하지만 남에게는 그리도 인색한 기준이 내 자신 저울질에는 기준도 모호 하고 판단도 무색 합니다.
우스게 소리로 여자가 우둔하면 삼대가 고생이란 말 들은 적 있습니다.
부모가 고생이고, 남편이 고생이고, 자식이 고생이란 뜻이구나 생각 했습니다.
치마 두른 여자라고 혹여 비하 시키는 말 아냐? 하고도 잠시 생각 했으나 맞는 말 같아 새기기로 했습니다.
어머니란 역할이 보통 역할도 아니고, 베갯머리 송사란 말도 없는 말 아니고, 고부간의 갈등과 화합이 한 집안도 들었다 났다 하는 것도 사실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성인 뒤에는 필시 현모 양처가 있고, 악인 뒤에는 교활한 여자의 간계함이 있는 것도 동서 고금 비슷합니다.
그러니 내가 현명해야 내 집안이 편하고 내 주위가 화평 할 텐데 그게 참 반성의 여지가 많습니다.
사람이 사람 사는 도리를 지킨다는 것이 제게는 무척 어려운 과제 입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사는 도리, 내 몫의 역할을 소홀함 없이 해야 하는 도리, 지혜와 복덕을 두루 갖춰야 하는 도리, 베풀고 나누며 더불어 살아 가야 하는 도리...
잘 하지는 못해도 벗어나게는 말아야지 하는 그 것 조차도 정말 쉽지 않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아님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이라는 말 그거 나 사는 모습이다 그럽니다.
그러니 시야도 좁고, 사고도 편협하고, 경험도 부족하고, 식견도 짧습니다.
그런 내가 이 아컴에 님들이 올린 글들을 보기 시작 하면서 정말 많은 깨달음과 반성의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구구 절절한 효심의 이야기,  홈 케어를 운영 하신다는 분의 살신 성인 이야기,  서슬 퍼런 세파 속에 등 기댈 이 없이 꿋꿋하게 홀로 서기 하면서도 결코 자식 남부럽지 않게 키워 내는 이야기, 작은 들풀 하나에 감동 하고 자연에 동화 되어 티 없이 맑게 사는 순수한 이야기, 아프고 부족한 가족이 있기에 더 힘내고 선하게 살아 가는 사랑 수호신의 이야기, 경쟁과 이기심이 만연한 이 혼탁한 세상에서도 결코 물들지 않겠다 항변 하듯 더 곱디 고운 글로 사람의 감성을 불러 내는 진솔한 이야기들....그리고 함께 웃고 눈물 지으며 격려의 손짓을 아끼지 않는 화답들...
읽을 때마다 부끄럽고, 감동하고, 박장대소하고. 가슴 아프고, 자성하고 그럽니다.
그러하니 늘 한결 같고 변함 없는 모습으로 내게 선망이 되어 주는 십 년 지기도 내겐 선지식이요,
동시대를 살면서 이렇듯 다양한 삶의 모습과 생각들과 희로애락의 면목으로 나를 비춰 반성케 하는 시공 자재한 무수한 이 곳 벗들도 내겐 선지식입니다.
내가 이제 바라기는 나를 알고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나 또한 선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고, 향내 옮기는 향기로운 사람이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것 만이 나와 인연 맺은 모든 유정들에 대한 보답일 듯 합니다.

쓰다 보니 또 두서 없는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나 가나 그렇게도 좋은 벗들에게 제대로 답례나 표현 한 번 못하는 내가 부끄러워 고백 했다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