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중2 아들 놈 학교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반 교실에 들어갔는데, 뒷편 게시판에 '우리들의 유서'하는 코너가 보입디다. 호기심 발동... 이 것 봐라... 어느 선생이 저런 짓궂은 글쓰기를 시켰는고? 여건이 허락지 않아 세세히 읽을 수는 없었으나, 대충 눈에 들어 오는 대로 훑어 보니... 그야말로 유서 인지라..'.나 죽으면 어쩌구 저쩌구...' '내 물건 중 이건 누구 주고..저건 누구 주고...' 어떤 녀석은 기특하게도 '남겨 놓은 내 물건 불쌍한 사람 나눠 주면 좋겠다.' 이런 유언도 했습디다. 또 어떤 녀석은 아주 간단 명료하게 '나 죽으면 제발 엄마 아버지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잘 사세요.' 그 집 부몬 아마도 평소에 징글맞게 싸우고 사나 보다 싶어 웃음도 나더이다. 근데 그 중 보기 드물게 또박 또박 정성껏 쓴 글씨가 돋보여 유심히 보니, 첫 머리 시작이 '내가 13년 살아 오는 동안 즐겁고 슬프고 어렵고 행복한 여러가지 일들을 겪으며 살았는데 ..... 이제 떠나려 하니 먼저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메어 옵니다....' 야, 이 녀석은 겨우 13년 살고도 인생의 맛과 도리를 아는 구나 ... 놀라웠고. 그리고 하나 더 맘이 머문 유서 내용인 즉 '사는 동안 좋은 일도 있었고, 괴로운 일도 있었지만 이왕 죽는 거 좋은 일만 기억하며 갈래요' 야, 기막히다... 감탄을 머금을 수가 없었습니다. ..............
아이들 천방지축이 얼마나 도가 지나쳤으면 유서 쓰란 깜찍한(?) 아이디어를 다 내셨을까 죽음이란 숙연한 명제를 던져 주고는 이래도 너희들 까불래? 이거 였겠지요. 화두 던지신 겁니다. 헌데, 그 천방지축 13세 미소년들 가슴속에 저렇게 철학이 있고, 분별력이 있고, 진지함이 있다는 사실이 저에겐 새로운 발견이기도 했답니다.
그래, 나도 오늘 유서 한 번 써 봐야지. 맘이 동했답니다. 이 글 마치고 나서 유서 한 장 쓸랍니다. 회한과, 아쉬움과 후회와 ...뭐 이런 통한이 한 순간 밀물이 되고 해일이 되어 지난 내 인생 다 덮쳐 버릴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오늘이 나 사는 마지막 날이구나' 이 거 하나 잡으면 오늘을 어찌 살아야 하는지 해답도 보일테지요. 오늘이 마지막인 것 처럼.... 다시 살 수 없을 하나 뿐인 날 인것 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