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겨울엔 내내 손뜨게 모자와 목도리를 두르고 다녔는데..
올 겨울은 큰녀석과 함께 나갔다가 산 까만 레노마 모자만 쓰고 다닙니다.
여름에 사놓은 무릎까지 오는 까만 코트에 까만 바지에 까만 가죽장갑..
더군다나 언니가 따뜻한 벨로아 코트를 하나 사줬는데 그것까지 까만색이라
올겨울 컨셉은 완전히 까마귀가 되어버렸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갑천변에 나섰습니다.
갑천변에 새로지은 중학교는 맨 첫해에는 새로 입학한 1학년들만 다녔습니다.
그래서 가방이 땅바닥에 끌릴 듯한 헐랑한 교복을 입은 어린티나는 아이들만
등하교길에서 만나거나 운동장에서 노는 걸 볼 수 있었는데..
덕분에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들을 지켜보며 학교옆을 지나다녔었지요..
물론 이제는 덩치가 아주 커다랗고 처녀총각 꼴이 나는 아이들을 보게되면
아.. 쟤네들은 3학년이구나.. 짐작을 하며 기특한 마음에 웃곤 합니다.
그 아이들이 벌써 새해가 되면 졸업을 하고 고등학생이 될 것입니다.
폐부까지 깊숙히 파고드는 차가운 공기..
갑천 찬바람에 눈물까지 날 만큼이지만..
따뜻한 집안에 있다가 중무장을 하고나와서인지 별로 춥다고 생각되진 않았어요..
겨울엔 자전거를 타고가면 볼이랑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아야 정상인데
그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이젠 점점 더 추운날이 이어지겠죠..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 힘든 계절이 오고 말았습니다.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은 따뜻한 옷과 집을 위해
이렇게 추운 바깥에서 일해야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갑천 물 속에 들어가서 돌아다니시는 멜빵 장화바지 입은 아저씨..
이런날에도 뭘 잡으시나봅니다.
시인이신 멋쟁이 동장님덕분에 생긴,
동사무소 글사랑회에 매주 한번씩 나가는데 오늘이 그 날입니다.
총무를 맡은 덕분에 올가을 이후에 네차례나 서점을 들락거리며
300여권이나 되는 신간 서적들을 맘대로 사들이는 호사(?)를 누렸지요..
물론 회원들의 다양한 수준과 취향들을 참고하긴 했지만,
감투가 뭐 달리 감투랍니까..
새로나온 신간을 내 입맛대로 골라 책 목록속에 넣을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
그런데요 그게..
한두번 서점을 들락거릴 때는 아주 신나는 일이었는데..
2003년의 남은 마지막 예산을 사용하기위해 서점을 들른 어제는
정말 힘들더군요..
그 많은 책중에 혹시 그동안 구입한 책과 중복된 책은 없는지..
작가별로 가장 빼어난 작품이다 생각되는 책을 엄선해야 하고
회원들의 수준을 고려해서 너무 난해한 책은 피할 것 등등..
그 많은 책중에서 좋은 책들을 고르다보니
책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문자들이 멀미를 일으키며 나를 공격해오는 느낌..
제각각 자신만이 다 옳은 소리라고 아우성치는듯한..
그래서 갈 수록 힘 든 일이 이 일이라는 걸 실감한 어제였습니다.
그나마 그동안 서점근처를 꾸준히 들락거리고
토요일마다 배달되는 조선일보의 북스를 관심있게 들여다 본 보람은 있다..
싶더군요..
적어도 베스트셀러 코너만이라도 생소하지 않은 작가들이
더 많았던 걸 보면 말이예요..
'크리스마스의 기쁨'이라는, 빙크로스비의 부드러운 케롤씨디가 한장씩 들어있는
아담한 책 두 권을 준비해 가서
카드와 함께 동장님과 한달에 두 번 오셔서 강의해 주시는 선생님께 전해드렸습니다.
시인이신 우리동네 동장님이 주민들을 위해 글사랑회를 만들어주신 이유는요..
어느날 동사무소 이층 회의실에서 내려다보니..
동사무소 바로 옆 숲밑들공원에 나무그늘 벤치에
고즈녁히 책 읽는 여인이 있더래요..
한폭의 그림같은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와서
모든 주민들이 저런 모습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주민들을 위해 파격적인 예산으로 책과 문학교양강좌를 마련해 주시기로
결심하셨다고 해요..
아는 언니의 스카웃(?? ^^)으로 회원 가입을 했는데
어쩌다보니 감투까지 써버려서 생각보다 잡다한 일이 훨씬 많지만
책을 가까이 하는 일이라 즐겁습니다.
사실 전 책을 늘 곁에 두기는 하지만,
많이 읽는다기보다는 책을 많이 좋아하거든요..
곁에만 두어도 부자가 된 듯 흐뭇해서
다 읽지도 못하면서 평소에 욕심을 부리며 잘 사다 나르는 편이고요..
왕푼이 이참에 딱 걸린거죠.. 모.. 쿠쿠..
서점엔 별별 책이 다 있습니다.
돈 버는 방법에서 얇팍한 처세술..
심지어는 바람 피우며 들키지 않는법까지 세세히 알려주는 책도 있어요.. ㅎㅎ..
하지만 그렇게 태산처럼 많은 이 세상의 모든 책들중에도
그 어느것 하나 불변하는 정답은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많은 책들이 더 이상 뭐가 필요하겠냐구요오~~~ ^^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사람들은 그 정답을 찾아 헤매는 것일 거구요..
물론 한권의 좋은 책이 인생을 바꿔놓기도 하지만요..
이 모든 것은 언제나, 아직도 하나의 과정이니까요.. ^^*
자식들한테 김치라도 겁 없이 나눠주고 싶으셔서
두접도 넘는 배추를 절이신 어머니 덕분에 김장 김치가 가득..
메주도 잔뜩 쑤어서 띄우려고 말리는 중이고..
이젠 마음까지 함께 휴식에 들어간 듯한 겨울날입니다.
이만큼 따뜻한 집과 주변환경으로 지낼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다정한 일상의 시선을 주고받을 가족들이 곁에 있고,
무엇보다 따뜻한 난로가 되어주는 좋은 사람들이 마음 안에 기쁨으로 머물러 주어서
늘 힘이 됩니다.
(역시 난 복도 많아요..^^)
주변에서도 점점 어려운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텔레비젼을 켜면 알고싶지 않은 뉴스가 더 많은 이즈음인데..
우리네 보통사람들은 그저 분수를 저버리지 않고
가진 것 안에서 만족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
어려운 이들과 마음만이라도 함께하며 조금은 웅크리고 살아주는 게
이 겨울을 기쁘게 나는 지혜 아닐까.. 싶습니다.
炅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