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마다 내 긴 생머리가 주요 인사거리다.
== 어머.. 머리 대~게 많이 길었다아~~
== 와.. 머리 너무 길었다.. 좀 짤라라..
== 뒤에서 보고 왠 아가씬가 했네..
사실.. 예전엔 나도 40살쯤 되면 라면머리를 해야할 줄로
당연하게 믿었었다.
그런데 막상 40을 넘겼는데도
내가 좋은 모습을 포기 할 수가 없는걸 어쩌나..
머리가 정말 많이 길긴 긴 모양이다.
자다가 몸을 뒤척이는 그의 어깨밑에 내 긴 머리카락이 눌려서
잠을 깰 때도 있을 정도니 말이다.
그러고보니 어릴적부터 난 머리를 많이 길렀었다.
다행이 중학교때에도 긴머리가 허용되는 학교로 배정받아서
엄마의 살뜰한 손길을 아침마다 느끼며 이쁘게 땋고 다녔었다.
중3때 고입을 앞두고 굳은 결심과 함께
단발머리로 자르고 학교에 갔을때
놀라시고 아쉬워 하시던 담임선생님의 표정도 잊을 수 없다.
처녀때에도 난 늘 거의 긴머리 아가씨였다.
말총머리에 숱이 유난히 많고 검은 내 머리에는
당시 유행하던 보그스타일의 파마도 윤시내파마도
산처럼 커다랗게 가분수가 될것이 뻔한 두려움때문에
할 수가 없었다.
결혼 이후 스프레이와 젤이 일용화 되면서
파마머리를 줄곳 고수 했었다.
짧은 파마머리도 한동안은 잘 어울린다 소리 들으며
하고도 다녔었으니까..
그런데 어느날인가부터 시시때때로 드나들던 미용실 발걸음을
뚝 끊었다.
줄곳 다니던 미용실의 주인이 먼곳으로 이사를 가 버리면
다니던곳을 잘 바꾸지 못하는 나로서는
잘하는 미용실 아는 여자들에게서 물어서 바꾸면 될
그까짖 사소한 일에서부터도 적응하는데 시간이 꽤 걸리는거라든가..
그런 이유 말고도
뭐랄까..
그냥 나자신을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내버려 두고 싶었음이랄까..
아무튼 어느날인가부터
자르고 볶고 살리고 죽이고 염색하느라
머리에 온갖 일상의 화풀이를 해 대는 일보다
자연스러움 그 자체에서 느끼는 자유로움인지..
마음이 편안하더라는 말이다.
(그러고보니 그때쯤부터 화장도 한듯만듯한 옅은 화장이 더 좋아졌었나?)
(혹.. 때늦은 라이커버진 컴플렉스 아닐까.. 몰라..ㅡ.ㅡ)
머리를 감고 말리는 일이 매번 힘들지 않은가 묻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매일아침 신경쓰며 거울앞에서
머리모양을 다듬는것보다는 훨씬 시간이 덜 걸린다고
이야기 해 준다.
(잠자는 공주과인 나로서는 아무때나 드러누워도 상관 없고..^^)
나는 우선 머리를 풀어 헤치면 자유로운 느낌이 좋다.
목에 감기는 내 머리결의 때로 좀 차가운듯
때로 바람막이처럼 따스한 느낌이 좋다.
사실은 도발적인 내 숨어있는 속내 모양새를
스스로 들여다 보는것 같은 즐거움도 느낀다.
(그래서 롹 가수들이 머리를 길러서 흔드나보다..)
쫄바지에 헐렁한 체크남방에 운동화를 구겨신고
내 기분 좋을때의 특유한 건들걸음을 걸을때의
아무도 방해 하지 않는 나만의 해방감이라니..
머리를 핀으로 틀어 올렸더니
이젠 머리카락 무게가 부담스러울만큼 무겁기까지 하다.
옛날같으면 삼단같은 머리결.. 하며
탐스럽고 근사한 쪽진머리를 자랑하고 다니련만..
가까운 미용실에 가서 한뼘 정도라도 쳐 달랠까..
망설이다가 당분간은 그만 두기로 한다.
맘껏 자라게 두지 못하고 싹뚝삭뚝 잘라내 버려야 하는
내 그리움과 간절함에게 미안한 마음을 이렇게라도 보상하려는??
그런 심정이
어쩌면 가장 큰 이유일것이다.
언제나 과감하게 그 모두를 체념하고
라면머리의 대열에 들어설 수 있을지..
炅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