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갑자기 밖에서
뭐 먹을래.. 물어오면.. 아무 생각이 나질 않는다.
뭘 갖고싶니..
갑자기 누가 그렇게 물어봐도..
그것도 도무지 그 순간에는 머리속이 하얗게 표백된 것처럼..
아무 생각도 나질 않는다.. 나는..
아마도 나 자신의 위주로는 별로 살아보지 못한
촌스러운 습관 때문이리라..
저번날 우리방에 쓰는 오디오를 수리하려고 삼성써비스쎈타에 갔었다.
집으로 부르면 출장비 받길래..
같은 방향 갈 일 있는 참에 그거 아끼려고
끙끙대고 보자기에 싸서 들고 갔더니..
들어서는데 90도 깍듯이 인사는 물론이고..
수리 예상비는 얼마인데 수리 하시겠습니까..부터 시작해서..
아무튼 무쟈게 사람들이 친절했다.
그런데 더욱 인상적인 기억..
카세트는 거의 사용을 안하시네요??
음.. 가끔 씨디로 녹음은 하시나부죠?? 라며
친절한 담당 써비스맨.. 구석구석 먼지를 털어내 주며
사용한 내역까지 알아맞히는 것이다.
다 들킨 기분이예요?? 하며 유쾌하게 웃어줬었다.
내 마음의 상태도 좀 그때그때 적절히 점검해서
무엇이든 적절한 조치를 취해 주는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도 그날 몹시 쓸쓸했는지..
그런 생각을 하며 돌아왔던 것 같다.
하루키의 수필집에 보면, 맞춤 만년필 이야기가 나온다.
소개장을 들고 허름한 곳으로 찾아갔더니..
손을 내놔 봐요.. 하고는
손가락 하나하나의 길이와 굵기를 재고,
피부에 껴 있는 기름기를 확인하고,
바늘끝으로 손톱의 딱딱함까지 살피고,
갖가지 상처자국까지 메모한 다음에 다시 옷을 벗으라고 한다.
그리고 척추뼈를 위에서부터 하나하나 더듬어 내려간다음..
나이와 고향과 월급과 용도까지 물은 후,
그리고 석달후에..
꿈처럼 몸으로 쏙 스며드는 만년필이 되어서 돌아왔다는 이야기.
도무지 어떤 만년필인지는 상상이 되질 않지만..
아무튼 그렇게 내 마음까지 헤아려 내게 딱 맞춤인 그 무엇..
무엇??
하루키는 꿈처럼 몸에 베어드는 문장을 파는 가게에서라면,
바지를 벗으라한들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 하였는데..
난..
난??
아.. 난 그러고 보니
이미 너무 많은 맞춤의 선물들을 꽁짜로 잘 얻어서 쓰고 있는 걸..
내가 사랑하는 당신들에게서 지금 이 시간도 전해져오는
따뜻한 웃음.. 마음..
한낮의 밝은 봄볕아래를 날으는 날파리들의 몸짓까지도..
이처럼 한가롭게 창밖으로 내다 볼 수 있는 여유..
꿈처럼 내 몸으로, 마음으로 쏙 스며드는..
이 봄날 누군가 부러울 맞춤의 선물이 아닐른지..
다시 머릿속이 하얗게..
빨랫줄에 널린 뽀얀 옥양목처럼 표백되어서..
아름다운 기억들 속에 길을 잃고 헤맬 수 있는,
덕분에 현실에 약싹빠르다는 소리는 도통 못 듣는
내 좌충우돌의 왕푼이 감성 말이다.. ^^*
炅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