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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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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BY 초록정원 2003-10-09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드라이해서 넣어두었었지만 옷걸이에서 접힌 자국때문에
엄마의 분홍빛 한복 치마는 다림질을 해야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눈물이 그렁그렁한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콧노래를 흥얼거렸더니 언니도 따라 불렀습니다.

띵똥~~
벌써 형부가 은하수사진관 아저씨를 모시고 왔습니다.
거실에 누워계신 엄마를 안고 안방으로 들어가 한복을 입혀 드렸습니다.
조카 시집갈 때 언니가 해 드렸던 분홍 한복입니다.
오른쪽 팔이 아프다고 하셔서 옷 입혀 드릴때에는
오른쪽 소매부터 팔을 넣어드려야 합니다.
벗겨 드릴 때에는 왼쪽부터 벗겨드려야 하구요..

조심조심..
옷고름 매어드리고 헤어로션 발라서 머리까지 말끔하게 빗어 놓으니
우리엄마 얼마나 이쁜지..
아무리 보아도 아픈사람 아닌 것 같다며
아침에 퐁퐁으로까지 깨끗이 닦았다는 엄마안경 씌워드리면서
언니가 깔깔대고 웃습니다.
나도 함께 웃었습니다.

그런데 깔까대고 웃는 언니눈에 펑펑 쏟아지는 눈물..
아.. 그러고보니 제 얼굴에도 온통 눈물이 번져있습니다.

때 맞춰 들어온 작은조카 헌이에게
앉아계시는 엄마 잠깐 좀 부축해 드리라 하고..
언니랑 나랑 다 지워진 화장 다시 고쳤습니다.

엄마도 아마 알고 계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는 사촌오빠가 마지막 사진 찍어드릴 때가
이미 90살을 넘기셨을 때인데,
하도 우셔서 필름 한통을 다 버렸다 하셨었거든요..
그런데 우리엄마.. 아직 80도 안되신 우리엄마가 그걸 모르실까요..
아무리 가족사진을 찍기위해서 사진관 아저씨를 모셨다지만.

그런데도 우리엄마..
사진기 앞에 아주 편안한 표정으로 씩씩하게 앉아 계셨습니다.
한쪽으로 약간 몸이 기울긴 했어도
그런데로 꽂꽂하게 잘 앉아 계셨습니다.
은하수사진관 아저씨가 할머니 사진 찍는 거 좋으신가 보라고 하셨습니다.

엄마 혼자 한 컷, 여럿이 한 컷,
그리고 엄마랑 나랑 언니.. 이렇게 셋이서 한 컷 찍었습니다.
사진관 아저씨가 환한 표정 지으라 해서 환~한 얼굴로 찍었습니다.

연분홍 치마가 바람에 휘날리더라..

연분홍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은 우리엄마한테 물어보았습니다.
엄마.. 사진이 잘 나올 것 같애??
당연하다는 듯이 하시는 말씀..
잘 나오는 것도 내 복이지..

엄마는 이제 모든 걸 당신의 복에 맡기신 모양입니다.
그래요.. 엄마는 이제 모든 걸
엄마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시거든요..
먹여드리는 일도 대소변 해결하는 일도
심지어는 드러눕고 일어나 앉는 일 조차
엄마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하시지 못하거든요..

곁에 있던 멜꼬롬한 남자가 겨우 서른 아홉에 저 세상으로 먼저 가버린 이후
그 모든 걸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만 했던 우리엄마..
그렇게 대쪽처럼 강하게 긴 세월 홀로 세상을 견뎌 온 우리 엄마가
이젠 모든 걸 천사처럼 착한 우리 언니손에 맡기고 계시거든요..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밤 쯤에 우리엄마..
그렇게 꿈에도 한번 안나타 난다고 성화를 하시던
그 멜꼬롬한 남자를 만날 수 있을까요..

아니.. 안돼요..
그러다가 영영 잠 속에서
그 멜꼬롬한 남자따라 저 세상으로 가버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

안돼요..
아직도 난 엄마의 체온이, 따뜻한 시선이..
더,
더 많이 필요한 걸요..

시부모님들 편안하시니.. 애들은 학교 잘 다니니.. 나서방 잘 있나..
이쁘게 입고 다녀라.. 머리 좀 묶어라..
신랑 이기려고하면 못 쓴다..
애들 너무 야단치지 마라..

 

안돼요.. 엄마..
얼른 자리 훌훌 털고 일어나셔야 해요..
오~~랫동안 머물러 주셔야 해요..
엄마.. 우리 엄마..

 

 

炅喜.




(2002.3.13)

 

 

** 엄마는 곧 서둘러 먼 길을 가시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