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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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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친구가 있었네


BY 마음그리기 2003-10-19

 
그 애를 처음 본것은
여고 2학년이 시작되는 첫날 교실앞 복도에서였다.
담임선생님께선 자리배정을 위해
키 순으로 우리들을 복도가에 일렬로 줄지어 세우셨다.
나보다 약간 작은 그애는 내 앞 서너번째에 있었다.
확률로는 거의 짝이 될 수가 없었지만
우린 보란 듯 짝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시력이 나쁜 급우들을
학급 맨 앞줄과 둘째줄에 포진(!)시켜주신
담임선생님의 배려 덕분이었다.
우린 둘째줄 한가운데 나란히 앉게 되었다.
하얗다 못해 뽀얀 피부를 가진 그애.
돋보기만큼 두터운 안경알이 콧잔등에 간신히 걸려있던
늘 힘들어보이던 그애의 콧망울....
첫 느낌은 차가웠고... 반가워 하며 악수를 청할때의 느낌은
의외로 부드러웠다.
늘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나는 얼결에 손을 내밀었고
희고 섬세한 그애의 손과
병색이 짙어보이는 내 누리끼리한 손이
어색하게 첫 접촉을 하던 순간이었다.
그 애는 내 책상위에 놓인 청바지 모양을 한 필통을 집어들고
참 이쁘다며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어디서 샀니?"
"그거...내가 만든거야....."
난 제법 바느질 솜씨가 좋았다.
자투리 천으로 이미 몇개의 필통을 만들어 놓았었다.

그 애와 나의 공통점은
둘다 안경을 썼다는것, 이름끝에 [희]자가 들어가는 것
그리고 팝을 좋아하고 어딘가 몸이 부실하다는 것이었다.
우린 촌스러운 이름 대신
그 당시 소녀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던
가명갖기를 시도했다.
그애가 선택한 이름은 가은이었다. 이....가....은
가은이는 미술학도였다.
무슨무슨 대회에 나가면 언제나 상을 휩쓸었고
미술시간이면 내 그림도 곧잘 수정해주곤했다.
어느날 가은이는 나를 자기네 집으로 데리고갔다.
달동네....
그야말로 그곳은 하늘밑 첫동네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하늘과 가까운 집이 가은이네 집이었다.
그렇다고 빈민촌 같은 달동네는 아니고
지역이 높은 그런 동네였다.
채광이 안돼서 어둠침침한 가은이의 방안에는
국무총리상을 받은 가은이의 그림이
우쭐한 모습으로 걸려있었다.

가은이에겐 위로 혼기가 꽉찬 언니 둘이있었다.
그 중 하나는 소아마비인 듯 다리를 절었다.
우리가 방과후에 가면
언니들은 언제나 상냥하게 반기며 단팥죽을 내오셨다.
검붉은 팥죽속에는 말랑한 인절미가 들어있었다.
약간의 계피향이 나는 달콤한 단팥죽 맛은
오래도록 잊혀지지않고 내 향수를 자극했다.

vincent를 즐겨부르던 그애.
나는 이글스나 존레논을 즐겨들었다.
미술학원을 다니던 가은이는
그때까지 나름대로 범생의 굴레에 들어있던 나를
음악이 가득한 제과점으로 외도를 시켜주었다.
사각의 유리안에 우상처럼 앉아
바쁘게 레코드판을 찾아 걸던 디제이의 멋진 모습과
적어 넣기만 하면 곧바로 흘러나오는 신청곡들...
그런 낭만을 교복을 입은채로 스릴있게 즐기기 시작할 무렵
가은이로 인해 내 성적이 조금씩 내려가고있음을 알았다.
서로에게 해가 되지않기를 다짐하며
자제하고...
나는 공부에...가은이는 그림에
조금씩 더 노력을 기울이기로했다.

내성적인 나를 하늘이 도운것인지
3학년이 되어서도 우린 같은반 짝이 되었다.
가은이 외엔 특별히 친한 친구를 만들지 못한 나는
언제나 그애의 주위를 맴돌며
...때론 상처도 받고 다투기도 하면서...
사춘기의 막바지를 보내고있었다.
한번 다투기라도 할라치면
나는 어김없이 혼자가 되어야했다.
가은이는 미술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며칠씩 나를 외면하며 골탕을 먹여주었었다.
그 나머지는 언제나 우리둘의 시간이었다.
3학년 담임께선 어느날 조용히 나를 부르셨다.
"넌 공부를 해야할 녀석이 왜 방황을 하는거냐?
*희는 어차피 미대에 진학할 놈이라 너랑은 입장이 다르지않느냐.
눈 딱 감고 학력고사까지만 참아라."
선생님은 늘 우릴 주시하고계셨다.
우린 그날부터 각자의 길에 충실하기로 했다.
그 대신 노랑색 일기장을 사서
{두 희의 일기}라 이름붙이고
하루씩 돌아가며 일기를 쓰기로했다.
방과후에 만나지 못해도
그날 무슨일이 있었는지를 모두 알수있었고
서로의 고민거리나 즐거움들을
그때 그때 공유할수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인가.....
일기에 등장한 한 대학생....
나보다 자유로웠던 가은이는
다른 세계를 발디디기 시작했던것이다.
차츰 서먹해지면서 일기는 어느틈엔가 끝이나버렸고
지금도 그 일기가 누구에게 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고3 2학기는 나 혼자만의 투쟁이었다.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때 가은이는 재수를 했다.
후에 가은이가 어느 미대 불교미술학과를 갔다는 말을 듣고
몇번인가 만날 생각을했지만
이런저런이유로 자꾸만 미뤄지고있었다.
우리집 마당에 목련이 흐드러지던날
참을수없는 그리움으로 어느새 난 지하철에 올랐다.
처음 가보는 가은이네 캠퍼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헤매다가
미술관 앞을 서성이다 돌아서 내려오는데
하필이면....
내 발앞에 떨어진 최루탄에
눈물 콧물 범벅이되어
그럲잖아도 울고 싶던 참에
최루탄을 핑계 삼아 엉엉울면서 돌아갔었다.

결혼을 하고 나는 지방에 정착해 살고있었다.
마음으론 늘 가은이를 그리워하고있었다.
우연히도 어느날 ...
시내 미술관에서 전시회 관람을 온 가은이를 만났다.
오랜만이야....
짤막한 인사 한마디를 나누고
우리는 각자 일행속으로 사라져야만 했다.
그때 왜 우린 따로 만날 약속을 안했을까....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그 후로 몇년이 흐르고
가은이와 함께 미술학원을 다녔던 다른 동창으로부터
가은이가 나를 찾았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두문불출하고 살았던 나를
그애가 찾기란 쉽지않았을것이다.
나또한 가은이를 여기저기 수소문해보았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없었다.
그저....결혼했고 두아이 엄마란 것만 흘려 들었을 뿐...

문득 그애가 그리운 날이있다.
아주 가끔이지만
꿈에서 그애를 만나면 언제나 전화번호를 묻는 나를 본다.
받아적으려고 끄적이지만
번번이 번호는 써지지가 않고
가위에 눌리다가 잠에서 깨곤한다.

걸핏하면 관절염으로 엄마의 등에 업혀
조퇴를 하던 가은이...
걸핏하면 코피를 줄줄 쏟고 빈혈로 고생하던 나....
이제는 중년에 들어서 20년도 훨씬 넘은 기억을 사르며 살고있다.
마흔줄은 활시위를 튕겨나온 화살마냥
바삐도 흘러가는데
나는 아직도 열아홉 소녀가 되어
늘 그애를 그리워한다.
나에겐 그런 친구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