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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명기 이야기 (이야기 14)
BY 명자나무 200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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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명기씨는 나와 함께 근무하는 미용사이다. 그에게는 9개월 된 찬희라는 아들이 있다. 처음 봤을 때부터도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 아빠가 들어서 기분 좋은 소리는 아닌 것 같아서 모른 척했다.
그런데 명기 씨는 일하는 중간에도 삐리릴 ~전화가 오면 한참씩 아이와 얘기를 주고받는다. 원래 근무시간에는 휴대폰을 꺼놓게 되어 있지만 명기 씨가 지키지 않는 통에 자꾸 싫은 소리를 할 수가 없어서 이미 그 약속은 흐지부지.. 있으나 마나 한 약속이 되어 있었다.
하루는 따끔하게 야단을 치려고 조용한 곳으로 불렀다. "아기는 아기 엄마가 봐야지.. " '직장 나온 아빠한테 아기가 울 때마다 전화하면 곤란하지 않겠냐'고 얘기를 하니.. 그제야 아기가 심장병인데 울면 심장이 격하게 움직여서 금방 병원을 가야하는 상황이 되어버린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아기가 유난히 아빠를 좋아해서 말은 못하지만 아빠 소리만 들어도 울음을 그쳐서 아이 엄마가 달래다 달래다 할 수 없을 때는 전화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심장병이라니... 잠시 아연하기도 하고 . 준비했던 말들은 모두 쓰레기통에 버리듯 버리고 '힘들겠구나' 위로의 말을 전하고 들어왔다.
엄마나 아빠나 인물하고는 담 싼 사람들이라 그 판에 찍어 나온 찬희 역시도 예쁘게 생긴 곳은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길이 없다. 그러나 엄마가 얼마나 깨끗하게 씻기고 닦이는지 .. 아기가 침을 안 흘리니 뽀샤시한게 냄새가 아리아리하다 앉아주기라도 하면 깔깔 소리 높여 웃기도 한다. 지 아빠를 유난스레 밝혀서 아빠 그림자만 바라보고도 '꺅꺅' 소리가 높아진다.
명기 씨는 1500만원 짜리 원룸에 전세로 살고있다. 아빠의 월급이라고 해봐야 아직 정식 미용사도 아니니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액수로 지난달에 오른 게 90만원이다. 이 돈으로 아기 병원 다니고 살림하고 적금 치르고 어찌나 모든 일에 근검 절약하는지 ..
친가 쪽으로도 도와줄 수있는 일가붙이 하나 없고 외가 쪽은 서해바닷가 섬 마을에 살고있어서 가끔 말린 생선이나 보내올까 역시 도움 안되긴 마찬가지이다.
모든 생활이 명기 씨 월급으로 해결되어야 하는데 우리 집에 취직하기 전에도 6개월이나 위가 아파서 놀았다니 그 살림살이가 허랑 하다는 걸 말 안 해도 알겠다.
어린이 심장병 재단에서 수술비 반액을 부담해주는 경우라서 천만 다행이라고 얘기하지만 그 가외로 드는 돈을 어찌 다 감당해야 할지 막막하다.
몇 번 급한 상황에 병원을 달려가곤 하더니 드디어 4월 2일이나 3일에 수술 날짜가 잡혔다고 하면서 수술하면 완치가 가능하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내 일처럼 기운이 난다. '그래...아는 병이니 수술만 하면 건강할 거'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준다.
명기 씨는 검사다 뭐다 해서 1일부터 4일까지 결근을 하기로 하고 그 안에 수술까지 다 마치고 5일부터 출근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갔다.
수술한다는 날에 전화를 하니 도대체 전화를 안 받는다. 전화 받을 마음의 여유가 없나보다 하면서도 기다리는 우리들의 마음도 초조하다.
원래부터도 어찌나 말랐는지 우리 아가씨보다도 몸무게가 덜 나간다. 너무 말라서 다리가 휑하니 벌어져 있던 명기씨. 꺼칠해지고 눈이 쑥 들어간 명기 씨가 가게로 들어온다. 우리는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수술 잘 했냐고 물어보니..
수술 못 했다고 한다. 검사하더니 서울로 보낸다고 짐 가지러 왔다는 말하는데 힘이 하나도 없다. "아니, 여태 검사하고 날마다 그 병원으로 다니던 아긴데..갑자기 수술이 안 된다고? " 물어보는 말에도 힘이 빠진다. 혹시 잘 못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도 불현듯 스친다.
오후에 병원 구급차 타고 심장 전문 병원으로 간다고 하는데 위로할 말도 없어 다 잘 될 거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정말 상투적인 이야기로 보냈다.
며칠이 지나도 전화도 안 오고 그렇다고 받지도 않고 ... 그 와중에도 명기 씨가 금방 올 것 같아 사람을 채워넣지 않아 노는 날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서 다른 직원들의 입이 삐쭉이 나와있다.
그 사정이 안된 건 안된 거고 내가 불편한 건 역시 참기 힘들다는 사고방식인가?
명기 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힘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6일날 수술을 했는데 아직까지 의식이 회복이 안돼서 중환자 실에 있다고 한다. 그때가 11일이었으니 며칠을 혼수상태로 있는 건가? 어린것이 사경을 헤매고 있다니.. 엄마가 아니어도 가슴이 아려서 견딜 수가 없다.
아기 엄마 밥도 잘 챙겨 먹이고 명기 씨도 힘내서 건강해야 아기도 살린다고 얘기는 하지만 이런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될 것인가?
가끔씩 손님들이 명기 씨를 찾는다. 그러면 자연히 찬희 얘기로 옮아가고 의견이 분분하다. 아직도 정신이 없으면 살기가 힘든 게 아니냐... 괜히 병원비만 나가는 것 아니냐.. 중환자 실이면 하루에 50만원씩 열흘계산으로 500만원 갖다내는 것도 봤다는 현실파도 있고 전셋집이라도 빼서 아기를 살려야 하지 않느냐는 인정파도 있고 떨어지는 꽃잎처럼 의견이 분분하다.
명기 씨도 갑자기 닥친 일이라 전세금마저도 병원 비로 들어붓고 길에 나 앉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다. 아직도 명기 씨에게서는 전화가 안 온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우리는 아기가 살아있으니 잘 견디고 있는 거라고 여기고 있다. . 그러나 그 많은 병원 비를 어찌 할거나... 돈 아낀다고 밥이나 제대로 사먹고는 있는 건지... 가슴이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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