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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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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녀


BY 가시나무 2004-02-14

내가 그녀를 알게 된 것은

남편을 통해서였다.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지난 앎이니

오랜 인연이다.

악연도 인연이라면 말이다.

 

 

남편의 소지품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녀,

그녀의 편지와 일기장 그리고 사진으로

난 그녀를 보았고 알았다.

 

 

 

그때 남편은 서른의 꼬랑지 쯤에 매달린 나이로

지방근무를 했고

근무지에 있던 아파트에서 남편과 회사직원들이 같이 생활을 했다.

우리가족이 둥지를 틀고 살던 서울에서 두 시간 남짓한 그 도시는

무리하면 출퇴근이 가능할 수도 있었으나

남편의 직업성격상 일 시작시간이 이르기 때문에

숙소를 그 도시에 정했던 것이다.

 

남편은 주말엔 당연히 집으로 왔고

주 중에도 서울본사를 자주 방문하였기에

여느 주말부부와는 달리 떨어져 산다는 느낌을 별로 갖지 못했던 나날이었다.

때론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애들을 데리고

남편의 근무지로 찾아가기도 했었으니까.

 

 

 

어느 해,

아마도 연휴가 끼었던 주말이었던 것 같다.

애들과 함께 남편에게 갔다.

변변한 가족나들이 한번 제대로 못하고 사는 안타까움과

서울을 벗어난다는 설레임으로 찾아갔던 그 도시,

남편의 책상 위에서 뒷통수를 얻어 맞는 강한 충격을 받은 것이다.

 

 

하나씩 하나씩

꺼풀이 벗겨지는 그간 남편의 행적과

그녀가 남편에게 보애온 편지와 일기장 그리고 사진들.

충격 속에서 내 손에 들려져 있던 것은

주방 싱크대 안에 있던 양주병이었다.

 

아파트 놀이터로 애들을 보내고

양주병 주둥이를 목에 들이대며

책상서랍을 샅샅이 뒤지고

간이 책꽂이까지 살폈다.

 

뭐 어쩌겠다는 작정도 없이

꼭 그렇게 해야하는 사람처럼...

 

 

 

 

예나 지금이나

정리하곤 담 쌓고 사는 남편,

어지럽혀진 그의 물품들 사이에서

발견 된 A 4 용지  안에는 사람이름과 전화번호가

무질서하게 적혀 있었고

이름 옆의 괄호 안에는 아이디가 적혀 있었다.

 

그 아이디들은 남편의 채팅 부산물이었던 셈이다.

 

 

지금과 달리

그때는 국내통신망만 있어서

하이텔이 주를 이루고 있었고

곧 이어 천리안과 유니텔이 나왔던 걸로 기억된다.

 

전화선을 이용해서 통신을 하던 그 시절,

남편은 하이텔사용자였고

그녀 또한 하이텔을 이용하며 한반도 맨 아래녘에다 둥지를 튼

삼십 초반의 가정주부였다.

 

그녀의 편지와 일기장을 통해

그녀의 직업, 사는 곳 그리고 그녀의 생각.

거기다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한 탓으로

자신의 나이에 비해 일찍 애들을 두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녀의 전화번호까지

내 손에 넣을 수 있었다.

 

 

 

 

to be continued

 

덧]

아주 오래전 이야기임에는 분명하지만

내 가슴속의 상처는

어제의 일처럼 생생한 아픔입니다.

 

나와 그녀의 인연을

악연이라고들 합니다.

 

이 악연의 고리는

여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젠 남편이 아닌

나와 그녀의 연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