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녀를 알게 된 것은
남편을 통해서였다.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지난 앎이니
오랜 인연이다.
악연도 인연이라면 말이다.
남편의 소지품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녀,
그녀의 편지와 일기장 그리고 사진으로
난 그녀를 보았고 알았다.
그때 남편은 서른의 꼬랑지 쯤에 매달린 나이로
지방근무를 했고
근무지에 있던 아파트에서 남편과 회사직원들이 같이 생활을 했다.
우리가족이 둥지를 틀고 살던 서울에서 두 시간 남짓한 그 도시는
무리하면 출퇴근이 가능할 수도 있었으나
남편의 직업성격상 일 시작시간이 이르기 때문에
숙소를 그 도시에 정했던 것이다.
남편은 주말엔 당연히 집으로 왔고
주 중에도 서울본사를 자주 방문하였기에
여느 주말부부와는 달리 떨어져 산다는 느낌을 별로 갖지 못했던 나날이었다.
때론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애들을 데리고
남편의 근무지로 찾아가기도 했었으니까.
어느 해,
아마도 연휴가 끼었던 주말이었던 것 같다.
애들과 함께 남편에게 갔다.
변변한 가족나들이 한번 제대로 못하고 사는 안타까움과
서울을 벗어난다는 설레임으로 찾아갔던 그 도시,
남편의 책상 위에서 뒷통수를 얻어 맞는 강한 충격을 받은 것이다.
하나씩 하나씩
꺼풀이 벗겨지는 그간 남편의 행적과
그녀가 남편에게 보애온 편지와 일기장 그리고 사진들.
충격 속에서 내 손에 들려져 있던 것은
주방 싱크대 안에 있던 양주병이었다.
아파트 놀이터로 애들을 보내고
양주병 주둥이를 목에 들이대며
책상서랍을 샅샅이 뒤지고
간이 책꽂이까지 살폈다.
뭐 어쩌겠다는 작정도 없이
꼭 그렇게 해야하는 사람처럼...
예나 지금이나
정리하곤 담 쌓고 사는 남편,
어지럽혀진 그의 물품들 사이에서
발견 된 A 4 용지 안에는 사람이름과 전화번호가
무질서하게 적혀 있었고
이름 옆의 괄호 안에는 아이디가 적혀 있었다.
그 아이디들은 남편의 채팅 부산물이었던 셈이다.
지금과 달리
그때는 국내통신망만 있어서
하이텔이 주를 이루고 있었고
곧 이어 천리안과 유니텔이 나왔던 걸로 기억된다.
전화선을 이용해서 통신을 하던 그 시절,
남편은 하이텔사용자였고
그녀 또한 하이텔을 이용하며 한반도 맨 아래녘에다 둥지를 튼
삼십 초반의 가정주부였다.
그녀의 편지와 일기장을 통해
그녀의 직업, 사는 곳 그리고 그녀의 생각.
거기다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한 탓으로
자신의 나이에 비해 일찍 애들을 두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녀의 전화번호까지
내 손에 넣을 수 있었다.
to be continued
덧]
아주 오래전 이야기임에는 분명하지만
내 가슴속의 상처는
어제의 일처럼 생생한 아픔입니다.
나와 그녀의 인연을
악연이라고들 합니다.
이 악연의 고리는
여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젠 남편이 아닌
나와 그녀의 연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