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앞에서 한글판을 띄우고
화면 가득 검은 글씨를 채우는 나를 보고
딸아이가 묻는다.
'엄마, 다시 글을 쓰시는 거에요?'
글이라니..
가슴에 담고 있지 못해 주절주절 새어나오는
이런 것에 글이라는 칭호를 달아주는 딸이 고마웠으나
선뜻 그렇다는 답을 못하고 쭈뼛거렸다.
한동안은 하얀 화면만 띄운 채,
몇 시간씩 버티고 앉아 있었던 거에 비하면
지금은 글이든 아니든 손가락이 부산히 움직여 주고 있으니
아이가 보기에
엄마가 다시 글을 쓴다고 생각을 했나 보다.
오랫동안 아무 것도 주절거릴 수 없었다.
가슴에선 부글거리는 소리들로 숨을 쉴 수조차 없었음에도
소리가 손끝으로
새어 나오질 않아서 또 얼마나 힘들었던가.
새로 시작한 학교의 과정이 내 실력엔 조금 벅차서
제쳐둔 숙제가 결석을 유혹해도
뭔가 쫓기듯이 해야할 일이 있다는 것이
나로 하여금 이런 시간을 만들게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예상대로나 계획대로 되어지지 않는 인생사에
목을 빼고 달아붙어 승부를 겨룰 듯이 덤비는 어리석음은 버려보리라.
내가 아닌 네가,
몰면 모는대로 끌면 끄는대로 그저 흐느적거려 보는 것도
생목숨 끊어내어 어린 가슴에 못 박는 것보다야 낫지 않을까.
몰리다가 밟히고 끌리다가 뭉개져서
스스로 닳아 없어지는 것을 꿈 꾸면서.....
나는 없고 엄마만 남고
나는 없고 아내만 남아
빈수수깡 같은 인생으로 사라진다 해도
그것을 억울해 하지 않는 마음이고 싶다. 오늘 밤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