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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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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여름은 즐겁지만은 않았네


BY 다정 2004-07-12

2 년전 여름.

 그 해 여름은 참으로 무덥고 비가 지겹게도 내렸었지.

여기로 이사오기 전이었으니 낡은 아파트의 베란다는 천정이 없는 것처럼

비를 흠뻑 맞고 있었고, 유달리 땀이 많은 나는 얼음 주머니를 몸에 매달고

다니는 이처럼 땀을 쏟으며 이방 저방을 휘젖고 다녔으니 아마도 더위에 사람이

맥을 못추었는지도.

어떻게 하다가 맞닥트린 휴가 날짜가 끝이 나지 않은 장마랑 겹쳐서 여행을 가야하나 말아야 할지 고민 아닌 고민에 빠지게 하였으나,결국에 내린 결론은 우리 둘이만 여행을 가기로 하였지. 딸 아이는 집에서 제 나름대로 휴가를 즐기겠다고 오붓하게 다녀오시라고 그러고

우리 아이가 내세우는 외동딸, 고명딸, 무남독녀, 첫째딸의 온갖 단어를 집합하여 표현한 그러한 신분?임에도 혼자서 모든 것을 처리하며 3박 4일을 우리에게 달콤한 휴가를 선사하겠다니 이런 기회가 어디인가 싶어 밑반찬에서 부터 마늘까지 잘 다듬어 짐을 꼭 꼭 싸고는 머리에 떨어지는 비마저도 흥겨웁게 여기며 우린 떠났다네........

 

왜 휴가만 되면 강원도로만 가는지,굽이굽이 돌고 돌아 문 한번 활짝 열어 보지도 못하면서도 와이퍼가 힘겹게 밀어 내는 굵기도 만만치 않은 빗소리를 들으며 남편과 난 목적도 없이 떠났지.누구는 예약도 잘하는데 워낙 그런것 하고는 관계를 짓지 못하는  우리네 습성도 한 몫을 담당했겠지만 끝이 없이 휙휙 돌고 돌아 도착한 곳이 예전에 간 그 곳 12선녀탕 근처의 계곡이었지. 밤은 깊었고 비는 엄청시리 쏟아지고, 주인은 어디 갔는지 썰렁한 민박집은 '콸콸'거리며 흘러가는 계곡 물소리에 갇혀 있더군.

 

 주인의 안내로 우리가 묵게 된 곳은 다름아닌 안채, 손님이 갑자기 줄어 들어 방 정리를 못한 탓에 주인네의 안채에 머물게 되었지. 연세가 족히 되어 보이는 할머님이 우리를 반기며 불러 들이시더군.  이 빗속을 뚫고 온 두 사람이 신기하게도 보이셨는지 그저 호기심에 가득찬 눈길로 몇 일만에 풀어 보는 말씀을 하시는지 연신 뭐라고 그러시는데 허기에 지친 우린 쌀 씻기에 정신이 없고 남편이 끓인 국적 불명의 찌개를 마주하고 늦은 저녁을 먹을려니 할머님도 예의 그 옆에서 계속 이어지는 말씀과 함께 동무를 하자시는데 아, 그렇게 우리의 첫날은 시작되었다네.

 "이봐..시악시..내가 맹그는기 뭔 줄 아남?

  만병통치 약이여,,이 걸 낭군한테 멕이봐.."

 

주름진 손바닥으로 연신 무엇을 주물거리며 환을 만드시는데 그것이 '할머니식의 약'이라는데, 없어서 못 판다고 그러시네. 마지막 밥알을 씹으며 눈은 그 약으로 쏠리는데 갑자기 불러 온 배에 스르륵 맥은 풀리고 그저 바랄 것은 누워서 푹 자고 싶은데 할머님은 우릴 곱게 두지 않으실 것 같고,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더군.

 "할머님,저희 씻고 잘께요..약 이야긴 내일 들을께요"

순간 그림자가 눈으로 스쳐지나는 것이 할머님은 팽 돌아 앉으시고 얼떨결에 놓여난 우린 동작도 빠르게 대충 씻고서 한켠의 방에서 잠을 청하는데 갑자기 들리는 이상한 여자의 웃음소리???.

  마루로 나가 보니 확성기를 갖다가 둔 것처럼 텔레비젼에서 한 여자가 웃는데 온몸에 소름이 좌악 돋는 것이 드라마 속의 웃음이 그렇게 무섭게 느껴지기도 아마 처음이었을거야.

잠이 없으신 할머님은 손으로는 만병통치의 약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고 어두운 귀로는 소리를 담을 수 없기에 텔레비젼은 정신없이 소리를 지르고, 정신건강 상태가 나보담 월등한 남편은 그도 모르고 코를 골며 자고 있는데 머리에 돌을 매단 나는 자꾸만 바닥으로 빠져 들기만 하고 창밖을 때리는 빗소리는 내 돌에 힘을 더해주는 그런 밤이었다네.

 그 후로 이틀도 별반 다를게 없이 강원도의 비, 충청도의 비, 경기도의 비를 만끽하며 우리의 여름은 그렇게 끝이 났다네.

 

 1년전 여름.

여름은 더운 맛에 여름이라지만 살을 태울 듯한 볕은 누가 이기나 내기를 하듯이 고개를 쳐들고 있는 어느날, 갑자기 걸려 온 남편의 전화

 " 우리 낼 휴가간다,,준비는 없고 그냥 가면 돼"

그렇게 우리의 휴가는 시작 되었지.

언제 우리가 준비하고 예약하던 그런 사람들인가. 그냥 떠나고 봐.란 식의 저돌적인 그 맛에 우린 또 이상한 휴가를 떠났지, 아이는 캠프를 가고 우리 부부..그리고 2쌍의 친구 부부와 함께. 빨간 패티큐어에 하얀 바지에 썬그라스까지 챙긴 두 여자들과는 달리 헐렁한 여름 츄리닝에 몇년 동안 신고 다니다 버릴까 하던 스포츠 샌들에 잘못 끊은 파마 머리가 나의 준비 복장..역시 사진은 못 속이더군.흑흑

 "애들없이 아흐,,넘 좋다,,,,"

다들 버리고 온 아이들에 대한 미련은 차가 떠남과 동시에 끝을 맺고 우린 떠났지.

강원도로.......(그 길이 막히는 이유가 다 우리의 탓만은 아닐걸)

영덕까지 가서 아는 이의 집에 짐을 풀고는

스무살때 해 보곤 이 나이까지 조신하게 어떻게 살았나 싶게 다들 껄렁한 자세는 기본에다

호방한 웃음까지는 덤으로 , 다 용서가 되는 그런 날이더군.

한 순배씩 잔은 돌고 "자기야 이 게다리 먹어 봐봐"에서 부터

뛰어가다가 누구의 발인지도 모르게 살짜기 밟아도 웃음으로 이해가 되던 바닷가의 넉넉함

그것까지도 좋았거든

늦은 밤까지 시집살이에서 부터 지나온 과거사에 이르기까지

훌러덩 발라당 입만 가지고 있는 이들처럼 속을 들여다 보이고 '우리 그래, 다 잘 살자'로

결말을 짓기까진 좋았거든.......

바닷가의 아침은 짠내와 함께 오더군.

파도 소리와 주인 집의 태생도 불분명한 강아지의 소리. 갈매기의 요염한 날개 짓에 더한 짠내음. 정말 아직까지 느낄수 있을 정도로.

 

다시 짐을 챙겨서 소백산으로 접어 들면서 일이 터진거야.

같이 간 부부중에 한 부부가 별일 아닌 일로 말다툼을 한거야.

1로 시작된 말다툼이 어찌어찌하다가 보니 1000까지 간거라고나 할까.

아, 죽을 맛이더군.

대충 웃음으로 무마해 보려던 나머지 네 명은 머릿속이 복잡해 지면서

수습을 못하겠는거야..

결국은'이혼'을 하겠다네.

일년에 육일을 일하고 하루 쉬는 기분으로 출발한 이 신성한 휴가에

그 부부는 "자기야, 이 게 다리 자기 먹어 "하던 그 부부가

김이 무럭무럭나는 대로변에 차를 세우게 하더니 '이혼'을 하겠다니.

칼만 들지 않았지 우린 다 강도를 만난 기분이었지.

겨우 달래서 소백산의 별장 비슷한 펜션으로 어거지로 도착한 일행들.

휴가가 이렇게 끝이 나면 안된다는 네  명의 보이지 않는 노력에

밤 낚시를 가자는데..그 아내는 기어히 잔다고 그러고...

외톨이 그  집 신랑은 우리에게 미안해하며 자꾸 술만 들이키고

같이 간 우리는 그냥 복잡함에 별만 헤아리고

내가 좋아하는 시의 별 헤는 밤과는 다른 골머리 헤는 밤이었다네.

돌아 오는 날

이천의 임금님 진수성찬도 마다한 그 아내는 우리의 임금님 상마저도 무수리 수준으로 만들고,,그러고는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우린 다 죽은 듯이 있다가 왔다네.

 

그 부부...자기들끼리 미안해 하고는 그걸로 끝이라네..잘 살고 있지...

우리의 휴가는 누구에게 다시 돌려 받아야 할지...

 

장마가 끝이 나면

아,,다시 이글거리는 태양의 계절이군.

이 여름은 어떠한 일들이 우리를 기다릴지..

그저 休家를 해야 할것 같지만

그 또한 좋을 듯하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