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열 자식을 건사해도 자식은 부모님 한 분 모시기도 힘들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자발적이라고 하기엔 낮 부끄럽고 현실적으로 아버지와 같이 지낼 상황이 되는 자식이 나였기에 내가 시골집으로 내려간 것이 6월 초였다
아버지를 변화시킬 수 있을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일주일도 안 돼서 무너져 버렸고 어느새 난 지쳐가고 있었다
음식도 거의 안 드시면서 병원 가시는 것마저 거부하시는 아버지에게 화가 났다. 어찌 이리 자식을 힘들게 하나 싶은 마음에 내 감정 소모는 널을 뛰고 있었다.
그러다 내린 결론이 ‘세상에 꽁짜는 없다“라는 것이었다. 자식 사랑에 헌신적인 아버지셨다. 남매였지만 첫째로 아낌없는 사랑을 받고 자랐고 요샛말로 하면 딸바보인 아버지시다
아버지의 일상을 보는 것이 힘들고 화도 났지만 그 모든 모습들이 순간순간 너무나 짠해서 하루에도 몇 번 씩 울음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자식이니까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와 같이 지낼 수 밖에 없지만 아버지의 살아온 삶을 알고, 사랑을 넘치도록 받았다는 정서적인 교류가 없었다면 이토록 아버지에 대해서 애달프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와 술상을 마주 앉고 당신의 살아온 삶들에 대한 추억과 회환의 여행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보내는 시간들을 덤덤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