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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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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쓸쓸한 가을날


BY 뜰에비친햇살 2004-10-11

 
    쓸쓸한 가을날 빛바랜 낙엽을 휘저으며 몇 장의 지나간 추억을 주워 담는다. 숨어 있던 노란 은행 알의 수줍은 몸짓이 탐욕스런 손짓에 구린내를 내 품는다. 짓이겨 보려던 한 알의 삶을 발 밑에 꼭꼭 숨겨 둔다. 지난여름 그토록 푸르게 넘실거리며 풍성하게 채워주던 잎새는 젊음의 뒤안길이 이토록 쓸쓸할 줄 알았을까? 붉고 노랗던 현란한 잎새의 춤사위가 이 가을 제 생의 마지막 유혹의 손짓임을 모른 체, 바삭거리던 낙엽은 밤사이 내린 안개비에 촉촉이 젖은 알몸을 포개며 잠이 들었다. 사는 모양 제 각각, 가는 모양 제 각각, 모든 것 다 보여 주고 외로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뜨거운 눈물 흘리지 않게 꽃씨라도 남겨 둔 게 다행이다. 산다는 게 이토록 쓸쓸하고 외로운 거였다면 따뜻한 인연 남겨 둔 게 잘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들판에 들 꽃이 피어나고,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고 새들이 날아다녀도, 푸른 하늘이 시려서 슬프고, 선선한 바람이 고마워서 눈물나고, 꽃들의 안녕이 서글프고, 잎새의 마지막이 서럽고, 사라져 가는 젊음 위로 흰서리 내려앉아 또 눈물이 나고... 그 꽃씨 새봄 되어 다시 새 잎 돋아나고, 그 새 잎 다시 푸른 잎 되고, 그 푸른 잎 다시 낙엽 되고, 그렇게 돌고 돌고 다시 돌아도 네 곁에 늘 고마운 인연 함께 하길 바라며 멍든 몸, 색바랜 몸, 젖은 몸으로 울고 있는 낙엽을 이런날엔 쓸어 담을 수 있는 일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