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가 가던 날 김천에서 선산으로 가는 신작로는 온통 굵은 자갈과 먼지로 뒤덮여 양 갈래로 줄 지어선 플라타너스는 여우비라도 오면 세수 한 번 할까 허구 헌 날 희뿌연 분 칠을 하고 있었다. 방아찧기 하듯 덜컹거리는 시루 같은 완행버스 속에서 행여나 읍내장 봐 오는 아낙의 비린 내음이라도 묻을세라 까치발로 비켜 서 동동거리느라 종아리엔 쥐가 나고 콧등엔 침 묻힌 자욱으로 반짝거렸다. 정류장 표지마저도 없는 작은 마을에 쏟아지듯 내려지면 살랑이는 갈 바람이 따라붙어 코스모스도 가련히 인사를 건네고 아침 이슬 채 가시지 않은 들국화도 향기를 날리며 반겨 주었다. 동네 어귀의 너른 들에는 철철이 가꿔놓은 수고가 포기마다 영글어 누런 황금으로 보답을 하고 있었다. 뒷담 넘어 덕자 언니네 감나무엔 까치가 홍시를 파 먹고 있었고 건너 건너 모순이네 앞마당엔 불그죽죽한 이를 드러낸 시린 석류가 입을 벌린 채 침을 흘리고 있었다. 삽작이 헤벌쭉 열린 마당에 들어서면 '강아지 왔나...' 하시던 그 소리에 '나 강아지 아닌데...' 입바른 소리를 떠들어 대며 댓돌을 훌쩍 뛰어올라 물컹물컹 쳐진 할미의 젖가슴을 휘젓던 기억도 있다. 삼십 년이 훌쩍 지난 오늘 뿌연 먼지 풀풀 날리며 덜컹덜컹 방아 찧던 완행버스는 사라졌지만 덕자 언니와 모순이도 시집가고 없었지만 물컹거리던 할미의 젖가슴도 아련해 졌지만 내가 왜 그곳을 찾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거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