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246

▶ 호수를 돌아 오며...


BY 뜰에비친햇살 2003-10-22

      ▶ 호수를 돌아 오며... 푸른 이파리를 아직도 채 감추지 못한 갈잎은 붉고 노란 수줍음을 드문드문 간간이 떨구어 놓았을 뿐 호수를 가로질러 숲 속을 헤집고 들어온 바람만이 살그락거리며 들락거리고 있었다. 십 년도 넘은 옛 기억을 더듬어 올라 간 오솔길은 들뜬 연인들의 어설픈 몸짓에 행여 낙상이라도 당할까봐 벼랑길 옆으로 난간이 쳐 있는 게 달라 졌을 뿐 예전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호수를 휘돌아 구불구불하게 나 있던 좁다란 그 길엔 그때도 나를 맞아 주었던 서너 마리의 잠자리 떼와 드물게 피어 있던 들국화와 다람쥐 먹다 남은 도토리 몇 개가 발 밑에 동동거리며 뒹굴고 있었다. 쉬이 왔다 쉬이 지나 갈 수 있었던 그곳 가늘게 떨고 있는 호수의 흔들림마저 없었더라면 심심하게 지나고도 말 길이었다. 하지만, 뜨거운 햇빛을 흡수하여 별빛처럼 부서져 토해지는 일렁임 위로 둥둥 떠 휘젓고 다니는 연인들이 속삭임이 오늘은 살갑도록 사랑스럽다. 아 맞아요. 그대도 나를 위해 저렇게 노를 저어 주었지요? 따가운 햇살을 가리라고 내 머리에 푸른 손수건도 얹어 주었지요? 힘차게 저으며 물살을 가르던 작은 배 위에 우리의 꿈도 함께 탔었지요? 그때보다 조금 힘들게 제일 가파른 오솔길에 다다르니 때 늦은 개나리 두 송이가 호수 위의 연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비탈진 오솔길 한 모퉁이에도 햇살은 비추고 있었다. 어느날 훌쩍 이 외진 곳으로 유배당해 태어날 시기도 모르고 늦은 개화를 시도했지만 결코, 저들도 아름다운 그 꿈을 영원토록 물밑에 잠재우지 말았으면 좋겠다. 소소소 살그락살그락 바람 따라 나는 또 호수를 돌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