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퀴고 간 자리 현란하던 도시의 조명과 시끌벅적하던 삶의 냄새마저 집어삼키며 펄 속에 갇혀 어둠 속을 지새우며 떨게 하던 진저리나던 바람과 함께한 잔인한 그날 너른 들에서 피어나던 통통하게 살찐 벼 이삭들의 소슬 거리던 소리도 사라지고 밝은 전등 아래서 도란거리던 옛날이야기도 자취를 감춰 버리고 평상에 둘러앉아 한 소쿠리 쪄온 옥수수 갉아 먹으며 떼구르르 구르던 노래 같은 웃음도 사라져 버린 그 나무 아래 넋 놓고 앉은 촌 노(老)의 얼굴엔 미소는 애 저녁에 깊은 주름 속에 덮여 버리고 진창 속에 나뒹구는 삶의 흔적들은 고스란히 시름으로 흩어져 있건만 지친 몸 쉴 곳도 마뜩이 없는 상실의 늪은 깊이만 더해 가는 그들에게 물어오는 저들의 야속한 질문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하나 더 보태주는 그들의 물음에 눈물도 대답도 다 말라 버린 길고도 암울한 침묵과 서글픔 마을을 잇던 오래된 다리와 동산 밑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던 꿈이 영글던 그들의 집은 온 데 없고 검붉은 사토가 뒤덮인 그곳 추수가 끝나고 일찍이 불어 닥친 초겨울 서리 같은 헛헛함이 남았을 지금 그곳엔 애석하게도 휑하니 모든 게 무(無)이다 여름의 끝에서 건질 수 있는 건 넉넉한 자들의 작은 마음과 성원 더해도 넘치지 않을 사랑을 보태어 무너진 가슴에 돌담으로 세우고 싶다. 2002/09/02/12:19 2003/09/16/01:33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