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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끝차이


BY 머큐리 2003-09-28

..  아침에 문득 잠을 깨어보니 5시가 조금 넘어서고 있엇다. 밖은 아직 새벽의 어둠을 내리깔고 있었고 밤새 엄마의 흔적을 확인하느라 잠을 설친 승엽이 녀석이 그제야 깊은 잠을 든 듯했다. 졸음이 금새 가셔지지 않아 불안했지만 츄리닝 바지에,  점퍼를 걸치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5시 12분.. 아직 잠결이라 자유로에서의 속력을 90정도로만 유지하고 달려야 했다. 슈만의 뭐였더라.. 새벽의 싸늘함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듯한 음악을 아무 생각없이 듣다보니 어슴프레한 아침의 기운이 모락 모락 피어오른다.
아버님은 아직  깨지 않으셨다보다. 대문이 잠겨있어 텃밭 사이를 돌아 마당으로 들어가 다시 한참을 문밖에서 안을 살펴야했으니까. 아버님은 작은 소리를 듣지 못하셔서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눌때에도 늘 소리를 높여야한다. 현관문을 몇번 두드리다가 잠시 아침 공기를 들이마셔보았다. 정말 맛좋은 밭냄새와 풀냄새.. 깊은 가슴속에서부터 싸하게 아침공기가 잠든 내장을 흔들어 깨우는듯한 기분좋은 긴장감이 밀려든다.어쩌나.. 잠시 망설이다가 전화기를 꺼내들고 번호를 눌러보았다.  조금 죄송하지만, 시간이 많이 없고 할 일은 쌓여있는지라 벨소리로 아버님의 단잠을 깨워야했다.
거실의 창문을 열어 묵은, 가라앉아있는 실내의 공기들을 내보낸 다음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 냉동고에서 닭 한마리를 꺼내 녹인다음, 남비에 물을 가득 넣고 먼저 한번 끓여내었다. 그동안 쌀을 씻고, 검은 콩을 불리고, 총각김치를 먹기좋게 썰어 그릇에 담고 절인 오이를 썰어 시원한 물을 붓고 파를 종종 썰어 넣었다.오징어젖을 꺼내 양념을 한다음 조그만 종지에 담는다. 조기 두마리를 꺼내(아버님은 구이를 별로 좋아하시지 않는다) 남작한 남비에 물을 조금 넣고 불을 붙였다. 자작자작할때쯤 고추와 파를 썰어 조기위에 얹고, 간장을 한스픈정도 넣고 마늘을 져며 넣은다음 뚜껑을 덮고 약하게 불을 줄여놓았다. 닭 끓인 물을 다 따라낸다음 압력밥솥에 닭을 넣고 다시 물을 넣고, 통마늘을과 대추를 넣고 푹 삶아낸다. 밥을 하고 상을 차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백숙을 떠 놓았다.
어느새 아침은 다 얼굴을 드러내고, 작은 새들이 이나무 저 나무를 오가는 것을, 고양이들이 기지개를 펴고 하나둘씩 댓돌에 올라앉는 걸 무심히 바라보았다.
아침을 드시는 아버님.. 찬이 웬지 부족한 느낌.. 뭔가가 빠진듯한 허전함은 뭐였을까. 괜시리 가슴이 찡해졌다. 혼자라는것.. 둘이었다가 혼자가 된다는것은 지독한 외로움과, 다시 혼자라는 홀가분함의 적절한 배합이 필요한 듯하다. 혼자로서의 삷을, 마치 아기가 걸음마를 처음 시작하듯 그렇게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걸려 넘어지는법도, 피해가는법도, 자신만의 소중한 보물들을 챙겨가는 법도 혼자서 익혀야한다. 돌보는 사람이 있지만, 이제부터는 혼자의 몫이다.
이른 아침 아버님을 보며, 그렇게 한발짝 한발짝 앞으로 나아가시길 간절히 바래보았다. 아기처럼..
행복과 불행.. 어짜피 한끝차이가 아니던가..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던가.
이제 남은, 앞으로의 삶을 정말 행복하게 꾸려 가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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