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소영이는 왕복 한시간을 걸려 유치원을 다녔다. 처음에는 힘든 내색 않던 아이가 추석이 지나고 한달이 넘어서자 얼굴이 많이 헤쓱해지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소영이를 바삐 준비시키고 차를 태워 집을 나설라치면 늘 미안함과 안스러움이 내 가슴을 짓누르곤 했던 기억이 1년이 지난 지금도 어젯일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나는 집을 떠나 마을 어귀를 나서면 벌써부터 피곤해하는 소영이에게 묻곤 했었다.
"소영아.허수아비 있는 길로 갈까, 코스모스 있는 길로 갈까"
코스모스 있는길은 자유로를 의미하고, 허수아비 있는길은 심학산 뒤에 꼬불꼬불한 산길을 뜻한다. 어느길이던 그때의 소영이에게는 '왜이렇게 먼'길일 뿐이었지만 난 그런 아이에게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주고 싶었다. 그래서 잠시라도 잊을 수만 있다면.. 즐길수 있다면 더할 나위없을테고 말이다.
산길을 따라 조금 가다보면 숲가에 솔로몬 어린이집이 나온는데, 그앞에 펼쳐져 있는 논에 허수아비 몇개를 세워 놓았었다. 어른이 만들고 아이들이 단장을 해준것 같은.. 동심의 냄새가 아릿하게 묻어나는..
다행히 소영이는 그 허수아비 보는 잠깐 동안 이나마 환하게 웃을 수 있었고, 그 웃음에 난 조금의 위안과 안도감으로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게다가 코스모스가 몇백미터로 즐비하게 늘어서 있던 자유로를 달리다보면 소영이는 늘 코스모스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재미를 느껴가고 있었는데, 코스모스는 늘 내차지였다.
"코스모스야..너 밥먹었니? 그럼 아주 맛있게 먹었지. 소영이 너는?
해가면서 둘이 수다를 떨다보면 벌써 일산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이는 것이었다.
코스모스와 허수아비.. 딸아이에게 소중한 친구가 되어주었던..
아마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들에게 의지했던 그 힘겨운 때와, 오랜시간 변함없이 친구가 되어주었던 것에 대해 감사함을 잊지 못할것 같다.
정말 힘들고 어려운 때일수록 자연에 의지하는 맘이 커져가는 것 같으다. 그건 곧 작은 것에 고마움을 느낄 줄 아는 겸손함이 생긴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늘 도전하고 열정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되, 자신이나, 타인이나 자연에게 겸손함을 잃치 않고 살았음 싶다. 그런 바람을 가져본다.
너무나 환한 가을에..